<시리즈> `96 전자산업 부문별 결산 (2);5대 가전제품

국내 가전산업에 있어서 96년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 해였다. 내수시장은 대부분 가전제품의 시장이 정체 또는 감소세를 보이는 등 올 한해 내내 불황에 허덕였다. 반면 해외시장은 전반적인 수출의 호조에도 불구하고 채산성은 점차 악화됐다.

가전산업 전반에 걸쳐 위기감이 한층 고조됐던 것이다.

그렇지만 올해는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를 시작으로 정보가전이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가전제품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한 해였기도 했다.

채산성 악화라는 문제가 있지만 독립국가연합(CIS)와 중남미 등 일본과 유럽의 경쟁업체들이 손길이 덜 간 신흥시장에 대한 가전제품 수출은 호조를 보이고 있고 브랜드 지명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국내 가전산업은 올해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맛본 것이다.

올해 국내 가전산업은 △해외생산 본격화 △외국가전사와의 제휴 움직임 확산 △전문업체들이 종합가전업체로의 전환 △외산가전제품의 유입 확산 △극심한 내수 침체 △해외 틈새시장의 발굴 등의 특징으로 요약된다.

이밖에 가전산업의 구조조정 움직임도 올해 나타난 현상이다.

가전3사는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5대가전제품을 중심으로 현지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있는데 올해는 이러한 생산기지를 본격 가동하기 시작한 해다.

덩달아 해외생산 비중이 크게 늘어났는데 컬러TV는 올해부터 해외 생산물량이 국내 생산량을 앞질렀고 VCR,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도 해외생산의 비중이 15∼30% 정도로 늘어났다.

이에 대해 업계 한쪽에서는 산업공동화의 우려가 일기도 했지만 갈수록 현지 무역장벽이 높아지고 가격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올해는 해외생산의 문제점이 일부 드러난 해이기도 하다. LG전자가 올해 이탈리아 냉장고공장을 철수했는데 이는 국내 가전업체들이 해외공장을 확대하는 데 있어서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낳았다.

올들어 가전제품의 내수시장과 해외시장간의 구분은 더욱 모호해졌다.

가전업체들은 최근 국내 시장에서 가격경쟁이 심화되는 데 대응해 소형 냉장고와 저가의 VCR와 전자레인지 등 해외공장에서 생산한 가전제품을 국내에로 유입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추세는 내년부터 본격화할 전망이다.

국내 가전업체들이 외국가전업체를 인수하거나 제휴를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올들어 활발했다.

LG전자가 지난해 제니스를 인수한 데 이어 대우전자는 올해 프랑스의 가전업체인 톰슨멀티미디어를 인수해 화제를 모았다. 대우전자는 최근 프랑스에서 톰슨멀티미디어의 인수절차를 밟고 있는데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경영이 가능할 전망이다.

LG전자는 냉장고에 대해서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와 합작공장의 설립을 추진중이고 해태전자는 일본 켄우드와 가전전반에 걸친 전략적 제휴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종합가전업체로의 전환을 모색하려는 움직임도 올해 가전업계에서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현대전자는 기존의 음향부분에 대한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차세대디스플레이와 DVD를 중심으로 한 종합가전사업을 펼쳐나갈 계획을 올해 내비쳤다. 해태전자도 그동안 취약했던 영상기기부문을 강화해 제5의 종합가전업체로의 부상을 꿈꾸고 있다.

올들어 외산가전제품의 유입이 부쩍 증가했다.

특히 정부가 일본 제품에 대한 수입선다변화제도를 완화하면서 일본업체가 해외공장에서 생산한 AV제품이 하반기부터 국내 시장에 대거 쏟아져들어왔다.

VCR의 경우 동남아산 일본제품이 대거 밀려와 국산제품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됐고 TV도 북미산 일본제품을 중심으로 내수시장에 파고들었다. 백색가전의 경우 유럽과 일본 업체의 제품이 아직 미약한 점유율을 보이고는 있지만 점차 유입량이 증가하고 있다.

이같은 환경 변화 속에서 올해 국내 가전시장은 최악의 침체기를 보냈다. 그렇지만 소비자들이 대형, 고급 제품을 찾는 추세는 날로 가속화하고 있다.

올해 컬러TV판매량은 작년보다 8.7%가량 줄어든 2백10만여대로 마감될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금액으로는 25인치이상 대형제품의 판매비중이 커져 작년보다 5%정도 감소한 1조원대를 간신히 유지할 전망이다.

가전업체마다 모두 뚜렷한 히트상품을 내놓지 못해 대체및 중복수요를 자극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특히 가전업체들이 기대를 걸었던 시험위성방송과 아틀랜타 올림픽은 침체된 컬러TV 수요를 회생시키는 데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아틀랜타 올림픽과 위성방송 출범은 가전업체들에겐 거품이었으며 김칫국부터 마신 꼴이 됐다.

그렇지만 하반기에 가로, 세로 화면비율이 12.8대 9인 삼성전자의 「플러스원」,LG전자의 「PC통신 TV」 대우전자의 「인터넷TV」 등 기술적으로 새로운 컬러TV가 등장해 내년도를 기약했다.

VCR시장은 컬러TV시장보다 훨씬 심각한 침체국면을 보인채 96년을 마감하게 됐다. 상반기중 판매실적이 50만대를 밑돌았던 VCR는 하반기에 들어서도 극심한 판매부진을 면치못해 연말까지 1백만대 안팎으로 위축될 전망이다.

이러한 실적은 작년 판매량보다 13%가량 줄어든 것인데 금액으로도 2천7백억원대로 10% 가량 감소했다.

VCR시장이 침체된 것은 수요부진과 함께 가전업체들이 향후 VCR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는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플레이어의 출시를 앞두고 가전업체들이 VCR의 신제품 개발 및 판촉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것과 관련있어 보인다.

설상 가상으로 일본업체들이 동남아에서 생산한 저가 VCR는 동급 국산제품보다 평균 5만원가량 저렴하게 팔리면서 본격적으로 국내시장을 잠식했다.

냉장고의 올해 내수판매는 1백92만대로 지난해보다 4%정도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렇지만 금액으로는 8천5백억원(출고가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소폭 증가했는데 이는 6백ℓ급 이상의 대형제품의 판매가 호조를 보였기 때문이다.

세탁기의 경우 지난해보다 5만대 정도 늘어난 1백40만대가 판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10Kg급의 대형 제품의 판매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전자레인지는 지난해보다 무려 20만대가 줄어든 95만대가 판매돼 극심한 판매난에 부닥쳤다. 특히 전자레인지는 다른 가전제품과 달리 최근의 경기침체가 민감하게 작용해 수요부진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반면 에어컨은 올해 1백5만대 가량 판매돼 1조2천억원 정도의 시장 규모를 형성해 전자레인지 대신에 5대 가전제품으로 떠올랐다.

특히 에어컨은 계절상품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장규모만으로는 TV를 제치고 시장 규모 1위의 가전제품으로 급부상했다.

이같은 내수시장의 침체에 비해 해외시장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컬러TV 수출은 연초 12% 정도 신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뛰어넘어 10월말 현재 작년같은기간보다 무려 27.4%가 늘어난 18억달러의 실적을 보였다.

TV수출이 이처럼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한 것은 그동안 중남미 , 러시아, 동유럽 등지에서 전개했던 유망시장 개척이 효과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냉장고 수출은 지난 10월말 현재 3억3천9백만달러를 기록해 31.1%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특히 대형 냉장고의 수출이 증가하고 있는데 4백ℓ급 이상의 중대형 제품이 7천4백만달러로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44.8%나 증가했다.

세탁기의 경우 2조식세탁기가 7천30만달러로 지난해보다 7.5% 감소한 가운데 완전자동세탁기는 1억2천2백만달러를 기록, 무려 40.6%나 증가하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가전제품의 수출은 AV제품에 집중됐었는데 백색가전제품도 마케팅활동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오히려 해외시장에서 잠재력이 높다는 사실을 가전업체는 올해의 교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VCR와 전자레인지는 올해 수출이 크게 감소했다.

VCR의 수출은 내수부진만큼 궁지에 몰린 한 해였다.

가전3사는 올하반기중 VCR수출이 작년같은보다 2%정도 증가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동남아, 중국 등지에 생산기지를 이전한 일본업체들이 「엔저」에 편승, 대대적인 저가공세를 펼치면서 중저가시장에 주력해온 국내업체를 괴롭혔다.

일본제품보다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가격경쟁력마저 상실해 국산VCR 수출은 올해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10월말현재 VCR수출은 10억7천7백만달러로 작년같은기간보다 11%가 줄어 들었는데 내년에도 이같은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전자레인지는 지난 10월까지 6억5천9백만달러를 수출해 0.4%가 감소했다. 이는 수출 부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해외생산을 확대한 것도 한몫을 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경기침체의 여파로 96년도 가전시장은 사상 처음 내수시장에서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기록을 남기면서 한해를 마감하고 있다.

<유형오, 신화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