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 다가오면 매출목표 달성을 위한 쥐어짜기에서부터 신년 사업계획 등 정신없이 이어지는 업무와 각종 행사에 쫓아다니느라 새해 설계는 꿈도 못꾼 채 제야의 종소리를 듣게 된다.
기업차원에서는 임원들의 인사 윤곽이 잡히고 조직이 개편되는 시기가 또한 연말연시다. 인사야 어느 때 해도 어떻겠는가 마는 연말연시에 인사가 많은 것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뜻도 담겨 있는 것 같다.
지난 수년간 계속돼온 호황으로 국내 전자업계 최고경영자나 임원들의 자리바꿈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인사이동도 승진이 주류를 이뤘었다. 전자경기가 침체됐던 지난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문책성 임원진 물갈이는 다반사였다.
그룹사들의 「돈줄」이었던 반도체 경기가 올들어 침체되자 주요 대기업들이 긴축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이는 전반적인 산업에 영향을 미쳐왔다. 최근에는 한 그룹 회장이 『이번 인사는 철저히 실적 위주로 하라』고 지시, 반도체는 물론 전반적인 전자업계 경영진의 구도가 크게 바뀌지 않나 하는 성급한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미 항간에서는 모업체의 누구누구는 어디로 갈 것이라는 등의 루머가 파다하게 떠돌고 있고 이로 인한 동요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 거명되는 사람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오랫동안 자리를 유지해와 이같은 루머들을 한층 솔깃하게 만들고 있다.
기업의 냉정한 속성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도 상황이 뒷받침되지 않아 중도하차한 경영인이나 임원들이 적지 않다. 특히 성장 초기단계의 품목의 경우는 열심히 기술이나 마케팅의 터를 다지고도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아 밀려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그런 사람들의 뒤를 이어받자마자 운좋게 시장이 호황으로 반전돼 승진가도를 달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1년째 계속되는 반도체 쇼크가 전자산업의 결국은 간판들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명예퇴직 바람에 이어 문책성 물갈이로 이번 겨울은 임원진들에게도 한층 추운 계절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