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출시된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SKC)」은 소비자직판용으로만 한 달 만에 무려 7만장(대여용까지 13만장)이 팔려 나감으로써 국산 애니메이션 비디오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토종 만화비디오가 세운 이 기록은 올 한햇동안 낱권으로 출시된 셀스루 프로그램 중 최다판매량일 뿐만 아니라 소비자직판 판매량에 있어 「인어공주」 「포카혼타스」 등 브에나비스타가 내놓은 클래식 타이틀과 맞먹는다는 점에서 난공불락의 애니메이션 왕국 월트디즈니에 도전장을 던져 거둬들인 국산 만화비디오의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2, 3년 사이 「블루시걸」 「아마게돈」 「헝그리 베스트 5」 등 매스컴의 취재경쟁 속에 잇따 제작된 국산 애니메이션이 극장흥행의 실패로 아예 소비자직판용 만화비디오 출시가 좌절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해 온 국산 만화비디오가 「둘리」를 계기로 돌파구를 찾게 된 것.
업계 전문가들은 『올 시장규모가 1백60억원에서 1백80억원 정도로 전체 소비자직판 시장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만화비디오가 향후 가장 전망이 밝을 것』이라면서 『교육물처럼 당장 수요폭발이 기대되지는 않더라도 내년도에 2백50억원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비디오전문 유통사를 경영하는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웃 일본의 경우 애니메이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소비자 직판시장의 절반에 달한다』면서 『우리의 경우 일본과 달리 에듀테인먼트 애니메이션을 교육물로 분류하기 때문에 상황은 좀 다르지만 장기적으로 순수 만화비디오의 마켓 셰어가 30% 이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만화비디오 시장은 상승무드를 타고 있는 국산애니메이션이 아직 태동기에 불과한 반면 브에나비스타가 내놓는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드래곤볼」로 대표되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양분하고 있다.
디즈니 만화는 「인어공주」 이후 매년 1, 2편씩 출시되는 개봉작 비디오의 경우 6개월 이내에 평균 7만∼8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가 하면, 극장흥행 없이 곧장 출시되는 다이렉트 비디오(Direct Video)의 판매실적도 보통 1만장을 웃돈다. 디즈니 이외에 국내에 진출한 메이저 배급사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 만화비디오는 컬럼비아의 「백조공주」만이 대대적인 홍보와 이벤트로 이례적인 히트작이 됐을 뿐, 대부분 5천장 미만의 판매에 그치고 있다.
이와 달리 국내 중소프로덕션들이 수입, 판매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비디오는 보통 10편 이상의 시리즈물로 비디오숍을 통해 대여된 후 하이라이트 부분만 다시 2, 3편으로 묶여 소비자 직판시장으로 역류되고 있다. 올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래곤 볼」을 비롯, 많은 일본 만화들이 백화점이나 서점 등 대형전시매장보다 오히려 청계천의 비디오가게 등을 통해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극장개봉작이 없는 관계로 업체들이 아직 소비자가 2만원대의 낱권짜리 만화비디오로 소비자 직판시장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 개봉을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S사의 구매담당자는 『「공각기동대」 「메모리스」 등 일본 장편 애니메이션이 불법복제 유통되면서 마니아층에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일본만화의 흥행성은 이미 입증된 상태』라며 『만일 디즈니 만화와 비슷한 가격대의 개봉작 일본 애니메이션이 단행본으로 출시될 경우 일본풍 만화에 익숙해진 10대 및 만화마니아들의 호응을 얻을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디즈니와 일본 애니메이션이 장악하고 있는 만화비디오시장을 앞으로 건전하게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애니메이션의 판권구매처가 유럽, 남미 등으로 다양해지는 한편 「둘리」의 성공이 국산 애니메이션의 제작붐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선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