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PC산업은 전반적인 경기침체에 편승, 사업 자체의 전망이 불투명할 정도로 어려웠던 한 해였다.
96년 국내 PC시장 규모는 지난해에 비해 19%가 늘어난 약 1백90만대로 추정된다. 이는 그동안 연 30% 이상의 고도성장을 구가했던 PC시장의 신장세가 점차 둔화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 주고 있다. 내년도 시장규모도 2백20만대로 올해에 비해 약 16% 증가에 그칠 전망이다. 이것은 97년 PC시장의 경기도 올해에 비해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케 해준다.
이처럼 국내 PC시장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으나 우선 가정수요의 위축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94년까지만 하더라도 가정수요는 전체 PC시장의 40% 수준에 불과했다. 나머지 60%는 정부 및 공공기관, 기업들을 포함한 업무용 수요가 차지했다. 그러나 95년부터 이같은 상황은 반전돼 일반 가정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전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면서 국내 PC시장확대를 주도해 왔다.
경기침체는 직접적으로 일반 가정에서 고가의 PC구매를 망설이게 했고 실제 용산 등 전자상가는 물론 대기업들의 대리점에서의 유통물량이 예년에 비해 적게는 80%, 많게는 60% 수준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이에따라 PC업계는 업무용 PC시장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한편, 유통시장에서도 1백만원대 이하의 펜티엄 PC가 중견기업에 의해 잇따라 출시되어 PC시장의 가격파괴현상을 주도, 올 한해 시장을 주도하며 PC메이커들의 제살깍아먹기식 경쟁을 부추킨 직접적인 빌미를 제공했다.
올해 PC시장을 위축시킨 또다른 요인은 수요를 촉발시킬만한 특별한 이슈가 없었다는 점이다. 3차원게임 지원기능, 화상회의기능, 음성합성기능(TTS), 영어캡션기능(CCFE) 등이 올해 주요 이슈로 나왔지만 사용자들로부터 커다란 호응을 얻지 못했다. 또 PC 시장활성화에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됐던 펜티엄프로칩도 인텔이 이 제품을 가정이 아닌 업무용분야로 마케팅을 집중하면서 국내 PC시장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는데는 실패했다.
올해 PC시장에서 특히 주목할만한 점은 외국계업체들의 두드러진 위축현상이다. 본사의 지원부족과 잦은 지사장 교체로 인한 내부진통 등으로 올해 시장점유율이 5%를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돼 지난해 10%선을 차지한 것과는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올해 판매부진에 몸살을 앓았던 PC업계는 불황타개를 위해 과거 외형적인 확대 일변도에서 탈피해 실판매 위주로 영업방식을 전환하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사양의 제품을 즉시에 공급할 수 있도록 주문제도 및 셀생산방식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PC업계의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대우통신의 일체형 PC인 「코러스 홈」이 유럽지역에 수출된 것을 기점으로 삼보컴퓨터, 삼성전자, 현대전자 등의 국산PC가 잇따라 수출되는 개가를 올린 한해로 기록되기도 했다.
올해 컴퓨터 주변기기 분야는 PC의 고급화와 멀티미디어 대중화에 힘입어 사양이 크게 상향조정된 것이 특징이다.
모니터의 경우 15인치 제품이 비약적인 성장세를 기록했고 17인치 이상의 고급 제품 판매도 큰 폭으로 늘어났다. 특히 주변기기 생산업체인 한솔전자가 96년부터 모니터 사업에 전격 진출함에 따라 이 분야의 시장 재편 가능성도 매우 높은 것으로 기대된다.
프린터 분야에서는 컬러 잉크젯기종이 완전히 대중화됐고 보급형 A4용지 레이저프린터 판매량도 급신장하고 있는 추세다.
또 고급기종에서는 컬러레이저프린터와 네트웍 프린터가 새롭게 시장을 형성하고 나서 97년 이후 프린터기종이 더욱 다양화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96년 기억장치 분야는 고성능 CD롬드라이브가 잇따라 출시돼 고속화 행진을 거듭했다. 96년초 2배속 제품이 주력으로 공급됐지만 9월 이후에는 8배속 제품이 기본으로 판매됐고 11월에는 또다시 10배속 제품이 이를 대체하는 등 불과 1년만에 3차례나 제품군이 교체됐다.
CD롬드라이브의 고속화와 함께 차세대 광기억장치로 주목받고 있는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롬 드라이브도 전격 등장했다. 그러나 12월부터 PC용 제품이 공급될 것이란 당초 기대와는 달리 삼성, LG 등 기억장치 생산업체들이 양산을 미루고 있어 내년초에나 일반인들에게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따라서 내년에는 DVD와 CD롬드라이브의 시장 주도권 다툼이 치열할 것으로 기대된다.
컴퓨터 내장부품인 보드분야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주기판 분야에서는 486기종이 단종되고 주도권이 펜티엄 고급기종으로 완전히 넘어갔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4.4분기 현재 주기판업체들은 펜티엄1백66MHz를 주력기종으로 공급하고 있으며 12월부터는 펜티엄 2백MHz 기종과 펜티엄프로기종 등 고급모델도 판매량이 크게 늘고 있다.
VGA카드 분야도 1백28비트 제품이 잇따라 출시돼 조만간 기존 64비트 제품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1백28비트 VGA카드는 MPEG-II로 압축된 영상물을 소프트웨어 방식으로 디코딩하는데 필수적인 제품으로 97년 상반기에는 PC의 기본 사양이 될 전망이다. 또 게임기 수준의 박진감넘치는 3차원 그래픽 출력을 지원한 3D 가속 VGA제품도 집중 개발돼 인기를 끌었다.
사운드카드는 동시에 16개의 악기음을 출력해주는 16폴리 웨이브테이블 방식의 제품이 보급형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고 하반기부터는 32폴리 제품도 잇따라 등장해 고급화를 주도했다. 12월에는 8개의 트랙에서 4개의 스피커를 동시에 독립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는 스튜디오급 고성능 3D사운드카드도 등장해 컴퓨터에서도 전문가용 오디오 수준의 디지털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됐다.
팩스모뎀은 상반기에 28.8Kbps급 제품이 기본으로 판매됐지만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대부분 단종됐고 33.6Kbps 제품이 이를 대체했다. 지난해까지 호황을 누렸던 MPEG보드 분야는 올들어 맥을 못추고 있는 상태다. PC 사양이 고급화된 것을 이용해 VGA와 복합영상보드에 소프트웨어 방식의 MPEG 구동 기능을 기본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남일희, 김영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