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69)

현미와 혜경이 밖으로 나섰을 때 은행 바로 앞 환풍구에서는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광화문 네거리 한복판 맨홀에서 치솟는 불길이 더욱 거세게 솟아오르고, 종로 쪽과 시청 쪽의 맨홀에서도 검은 연기와 함께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현금이 안전해야 할 텐데.」 현미는 하늘 높이 솟구치고 있는 불길을 바라보면서 금고가 불길에 휩싸일 경우를 생각했다.

어떠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일단 돈은 안전해야 하는 것이다.

돈이란 곧 직원들의 생명이고 은행의 생명이었다.

은행 일이 하루살이의 일 같다고 누군가 말했을 때 직원들 대부분이 그 말에 동감했다.

돈을 만지고 세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그날 안에 모든 장부를 맞추어야 한다. 그 일이 끝나야 하루를 마감하는 그들에게 내일은 또다른 하루에 불과하다.

하루살이라는 말에는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이 포함되어 있다. 비록 내일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하루살이지만 매번 반복되는 스릴과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현미는 그 스릴과 긴장감을 사랑했다. 현미 자신의 돈은 아니지만 온종일 돈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이 따분함 속에서도 생기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온라인 장애가 발생하고, 통신케이블에 불이 났다는 말을 듣고 오늘은 뭔가 심상치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던 현미는 오늘의 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다. 평상시의 스릴과 긴장감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통신케이블을 타고 들어오는 불길, 정말로 은행에 불이 붙을 것인가?

현미는 시청 쪽의 맨홀에서도 솟아오르고 있는 불꽃을 바라보며 은행에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를 생각했다. 은행뿐만 아니라 전화가 연결되어 있는 주변 건물에도 예외없이 전화선을 타고 불이 옮겨 붙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공포감이 일었다.

특히 세종로 지하도와 연계되어 있는 대형서점에 불이 옮겨 붙는다면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이르게 될 것이었다.

현미는 가까이에서 솟구치는 불길을 바라보는 혜경을 바라보았다.

혜경.

순간, 현미는 혜경의 눈빛이 강렬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치열한 눈빛.

혼돈의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