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특집] 정보통신시대 확대일로 계측기기 산업

전자.전기.정밀가공.컴퓨터 등 첨단기술의 복합체인 계측기기산업은 21세기를 주도할 반도체.정보통신.신소재.생명공학.의료.환경.우주.항공산업의 발전에 편승, 시장규모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유망산업이다. 사물의 양을 수치와 단위로 표시하는 계측기기가 없으면 연구개발은 물론이고 제품생산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동화.휴먼화가 진전됨에 따라 인간의 오감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되는 계측기기산업의 현황과 전망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국내 계측기기산업의 최근 5년간 성장율은 17.8%. 전 산업성장률 10.8%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이는 정부가 본격적인 통신시장 개방에 앞서 그동안 꽁꽁 묶어놨던 규제를 풀고 민간업체의 통신시장 참여를 허용함에 따라 통신사업자가 크게 늘어났고 케이블TV와 위성방송 실시로 대당 가격이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와 개인휴대통신(PCS)용 계측기기 수요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불량률을 감소시키고 품질을 제고하기 위해 계측기기를 도입한 기업이 늘어난 것도 계측기기 산업의 급성장을 부추긴 요인 중의 하나였다.

지난해 국내 계측기기시장을 수요측면에서 보면 수출은 전년대비 14.4% 늘어난 1억4천8백만달러, 내수는 32.6% 늘어난 11억5천9백만달러였다. 그러나 지난 3년간 10% 이상씩 꾸준히 늘어나던 계측기기 관련 수출액이 올 상반기에는 전년대비 20.9% 감소했는데 이는 가격을 무기로 삼은 중국, 대만 등 후발국가들의 공세가 거세고 대외 여건마저 악화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공급측면에서 보면 지난해 계측기기 생산액은 전년대비 19.7% 늘어난 2억1백만달러인 반면 수입은 통신, 방송용 계측기기 수입이 급증, 전년대비 32% 늘어난 11억6백만달러였다.

수출은 줄고 수입은 늘어난 등 시장여건이 전반적으로 악화된 올해 국내 계측기기 시장에서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은 외국 유명업체의 국내시장 공략이 본격화됐다는 점이다.

지난 4월 광통신 계측기기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일본 안리쓰사가 1백% 투자한 현지법인 한국 안리쓰, 윌트론이 설립된 것을 비롯 디지털 멀티미터의 선두주자인 미국의 플루크사가 33% 지분참여로 국내법인을 설립했고 그동안 마케팅과 영업을 분리했던 텍트로닉스사도 통합시켜 국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들 3개사는 선발주자인 미국 HP사와 함께 수요가 급증하는 국내 통신용 계측기기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특히 CDMA, PCS 등 이동통신 계측기기시장의 70% 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한국HP는 독일 로데&슈와르츠와 일본 어드반테스트의 집중 공략에도 불구하고 아성을 지키고 있다. 이에 힘입어 한국HP 계측기기부문 매출액은 지난 3년간 50% 이상 성장했으며 올해도 지난해보다 50% 이상 늘어난 매출액 2천억원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내수시장을 겨냥한 외국업체의 공세가 거세지는 만큼 일반 범용계측기기를 생산하는 국내 계측기기업체들의 입지는 축소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중국, 대만산 저가 제품이 대거 유입됨에 따라 설 자리를 잃고 통신, 방송사업으로의 급속한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인 계측기기생산업체 중 하나인 흥창물산이 통신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채산성이 떨어지는 일반 범용 계측기기 생산라인을 중국 청도공장으로 이전할 계획인 것을 비롯 이디엔지니어링, 메텍스, 신우전자통신 등 범용 계측기기생산업체들도 계측기기 일변도에서 탈피, 통신, 방송장비 생산에 나서고 있다.

특히 흥창물산의 경우 통신시장에 진출한다는 방침아래 지난 90년부터 꾸준히 연구개발을 추진, 연초 CDMA 기지국용 중계기와 CDMA 기지국 장비용 핵심부품인 선형증폭기(LPA)를 개발한 데 이어 최근에는 케이블TV용 컨버터 및 송신장비를 개발, 쿠웨이트에 4년간 2억달러를 수출키로 했다.

국내 계측기기업체들은 계측기기 사업에서 발을 빼는 반면 외국업체는 국내시장 진출을 강화함에 따라 자칫하면 국내 계측기기 산업은 고사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물론 이러한 위기상황을 인식한 정부가 계측기기산업을 수출전략상품으로 육성하기 위해 지원책을 강구하고는 있으나 우리의 기술수준은 아직 요원하다.

이를 방증하듯 현재 국내 계측기기업체들은 범용 계측기기는 국산화했으나 시험검사용, 교정용, 연구개발용 등 고정밀도나 고정확도를 요구하는 계측기기를 개발치 못하고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설계 및 상호처리기술, 성능평가기술도 아직은 초보단계며 설계 및 신호처리분야도 계측기기에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응용하는 초기 단계며 센서 및 핵심부품 관련기술이 낙후되어 있다.

물론 최근들어 흥창물산, LG정밀, 이디엔지니어링 등이 급성장하고 있는 통신용 계측기기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1백 오실로스코프, 3 스펙트럼 분석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상품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대다수 국내업체들은 외국 유명업체들과 기술제휴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으나 국내 기술수준이 워낙 떨어지고 대부분 중소업체들이어서 외국기업과의 접촉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이 분야의 기술장벽이 높아 외국업체들로서는 국내업체들과의 기술제휴에 따른 실이익이 별로 없다고 판단, 자사의 독자 유통망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2000년대에는 계측장비가 포함된 생산기술이 주종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지금부터 서둘러 한국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계측기기 기술개발에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초보단계인 국내 계측기술을 조기에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각계의 혜지를 모아야 하지만 정부출연연구소가 원천기술을 연구하고 이를 산업계와 협력, 상품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또한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재 30% 이하인 국산화율을 조속히 5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연구개발방향은 광계측기기, 양자 계측기기, 기계, 전자, 전기, 범용 계측기기 등 크게 세분야로 나눠지는 미래형 계측기기중 무기개발 등에 주로 사용되는 양자 계측기기에 무게중심을 둬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양자 계측기기가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양자현상을 계측기에 이용하거나 산업화하기 위한 연구개발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미, 일 등 계측기기 기술선진국은 이미 계측기기와 컴퓨터, 통신을 연결, 제품 개발과정부터 생산, 품질관리 애프터서비스에 이르기까지 계측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통합시스템 개발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감안, 민, 관이 합심해 21세기 유망산업인 계측기기 관련 기술개발에 나서야 할 것이다.

<김홍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