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메모리산업 가운데서도 주문형 반도체(ASIC)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 어제 오늘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메모리 반도체산업에 과감한 투자를 감행해 성과를 내기 시작한 80년대 후반부터 줄곧 제기된 것이 비메모리산업 육성문제였다.
그러나 지난 10년 가까이 비메모리산업 육성문제는 말로만 그쳐 오늘의 「메모리 한파」를 자초하게 됐음을 우리 모두 인정해야 한다. 우리나라 제1 수출품목으로 지난해 총수출의 17.7%를 차지했던 메모리 반도체산업이 국제가격 폭락으로 전자산업뿐 아니라 전산업의 연초 경제예측이 크게 빗나간 사실은 이미 아는 바와 같다.
전자산업진흥회가 최근 제시한 ASIC 활성화방안이 업계에 크게 와닿지 않은 것도 그동안 양치기소년의 늑대 이야기처럼 귀가 닳도록 들어온 데 기인한다. 물론 제품의 경박단소화로 중소 전자업계의 ASIC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나 생산기반이 갖춰지지 않아 제품의 적기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진흥회의 지적은 중소업계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것으로 공감을 얻을 만하다. 여기에 활용기술과 설계전문인력 부족으로 개발단가가 외국에 비해 턱없이 높다는 것도 ASIC산업 경쟁력강화 차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임이 분명하다.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메모리 중심의 제품생산 구조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설계능력을 갖춰 비메모리부문으로의 발빠른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인 것이다.
성급한 진단인지는 모르지만 메모리 반도체산업은 지난 50년대 미국에서 일본으로, 90년대에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시장주도권이 이전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언젠가는 가격경쟁력에 밀려 후발주자에게 주도권을 넘겨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비메모리 반도체는 이와는 사정이 다르다. 고도의 설계기술이 필요해 기술후발국들이 쉽게 추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메모리 반도체보다 고가이면서도 경기변동의 대응력도 크다. 99년까지 비메모리산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15% 이상으로 메모리부문의 9.4%를 크게 앞설 것으로 전망한 세계 반도체 전문조사기관인 WSTS의 시장지표만 봐도 우리의 나아갈 방향을 읽을 수 있다.
전자진흥회는 ASIC 제조시설을 확보하고 있는 연구기관의 시설과 기존 반도체공장 및 연구설비를 활용하는 방안, 설계기술 인력양성을 위해 연구소, 대학, 부설 ASIC전문연구소를 지정해 육성하는 방안, 민관이 공동출자해 ASIC생산 전문공장을 설립하는 방안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현재 중소 전자업체들이 이용할 수 있는 ASIC 관련설비는 반도체 4사와 서울대 등 3,4곳에 불과하고 ASIC 설계회사도 4,5곳에 머무르고 있어 시설확충이 절대 필요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비메모리 반도체산업의 육성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역시 인력양성이다. 설계기술 인력의 저변확대 여부에 따라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인력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세우지 않고는 비메모리산업을 발전시킬 수가 없다. 더욱이 다른 분야와는 달리 앞서 지적한 것처럼 비메모리산업에 필요한 인력은 고급 인력 못지않게 많은 기능인력이다. 고급인력도 필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기능인력의 양성도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설계인력의 저변확대 없는 고급인력의 양성만으로는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다. 비메모리산업이 발전하려면 인력구조가 「피라미드식」 구조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비메모리산업 중소업계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우선 관련시설의 확충과 활용도 제고 및 자금지원과 세제혜택 등 정부차원의 지원방안 수립과 함께 인력양성이라는 대전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해두고 싶다. 반도체산업을 키우는 정책당국과 업계는 기능인력에서 고급인력에 이르기까지 다각적인 인력양성 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적극적이고 과감한 투자가 필요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