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소프트웨어 산업을 살리자 총결산 (중)

「연중기획-소프트웨어산업을 살리자」 이번 회는 결산시리즈 중편으로 지난 6월 12일 18회부터 10월 23일 35회까지 18회분에 걸쳐 취재 보도했던 소프트웨어산업 관련 정책과 업계현황을 요약 정리한다. 정책부문은 제도, 수출, 지적재산권, 조달, 금융 등에 초점을 맞추고, 업계현황은 마케팅, 상품화, 유통, 사후지원 등에 대해 다룬다.

<편집자>

<> 소프트웨어 산업 정책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고학력의 우수한 기술인력이 대거 배출되는 국가다. 천혜자원이나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로서는 두되 기반의 소프트웨어산업에 큰 기대를 걸어 볼 만하다. 21세기 비전을 제시해야 할 정부 당국도 소프트웨어산업의 미래에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산업에 대한 비전만 있지 산업을 떠받쳐야 할 법적, 제도적 지원책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소프트웨어산업을 실질적으로 육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건실한 지원체제가 마련돼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우선 소프트웨어분야에서 기술인력관리는 가장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아직 법제도로 규정된 인력등급 분류체계와 이에 따른 보수체계, 즉 노임단가 기준이 마련돼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또 소프트웨어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가 금융기관 관계자들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마인드 부재다. 재산권을 이용해 금융대출을 시도하려는 기업들에 금융기관들은 『지적재산권이 무슨 담보가 되느냐』며 되묻곤 하는 것이 현실이다.

소프트웨어 개발비 산정기준도 개선의 목소리가 높다. 두 번에 걸친 개정작업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산적했던 문제들의 일부만을 해결하려 했을 뿐이지, 현재 진행되는 컴퓨팅환경 및 개발환경의 변화를 수용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은 보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는 지난 3월의 2차 개정 때조차도 최근 컴퓨팅환경의 대세인 클라이언트 서버 시스템 개발대가 기준을 수용하지 못해 업계와 개발자의 불만을 사고 있는 실정이다.

컴퓨터프로그램의 저작권 보호와 공정한 이용을 비롯, 관련산업과 기술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제정한 것이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이다. 이 법이 제정된 것은 GATT가 86년 9월 지적재산권을 처음 정식의제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인 95년 12월에 4차 개정이 있었는데 이 때 실질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추진했던 것이 리버스엔지니어링 허용부분이었다. 당시 정부는 리버스엔지니어링을 허용할 경우 외국업체들의 반발을 불러 통상문제로까지 비화될 것을 우려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 입법예고 전 있었던 공청회에서 리버스엔지니어링 허용에 가장 반대했던 이들은 유명 외국계 컴퓨터회사의 고문 변호사들이었다. 리버스엔지니어링이 허용될 경우 자사 프로그램들이 국산 소프트웨어업체들의 디컴파일레이션 대상이 될 것은 불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법률 전문가들은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은 다른 법률과 달리 보호대상인 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이 컴퓨터기술 발전동향에 따라 성격과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1년에 한 번씩은 개정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기관과 산하 공공단체가 필요로 하는 물품 및 용역의 수급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시장을 일반적으로 조달시장이라 한다. 소프트웨어분야의 연간 정부조달시장 규모는 95년 기준으로 패키지 3백억원, 용역 3천7백억원 등 모두 4천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96년에는 패키지 5백억원, 용역부문 5천억원 등 5천5백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그러나 정부, 공공부문은 그 규모에 상관없이 우리나라처럼 官중심 사고가 팽배해 있는 환경에서는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시스템선정 등 입찰과정이나 구매관행 등이 민간수요부문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을 꿰뚫고 있는 정부, 공공기관이 민간업체에 대해 매사 고압적 자세로 일관하는 것은 이제 극히 당연한 일로 돼버렸다. 민간업체에 대한 정부, 공공기간의 대표적인 관행 가운데 하나는 소프트웨어 패키지와 같은 물품의 무상기증 요구행위다. 지난 5월 정통부가 정부부처 전산시스템 구매예산 책정시 10%는 무조건 소프트웨어 구매에 배정해줄 것을 재경원에 요청한 것은 이같은 무상기증 요구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되고 있다.

소프트웨어 수출구조에 대해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 95년 한해 수출액은 총 4천1백20만 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용역수주가 45.2%, 일괄수주가 41.4%를 차지해 전체 수출을 주도했고 인력파견과 패키지는 각각 10.7%와 2.7%에 불과한 실정이다.

국내 수출이 이처럼 저조한 실적을 보이는 등 구조 고도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에 대해 기업들은 기술부족보다는 이를 상품화해 판매하는 영업력 및 정부의 정책지원 부족 등을 주된 이유로 들고 있다.

<김상범 기자>

<> 소프트웨어 상품화와 유통

소프트웨어업체들의 자생력을 판가름할 수 있는 척도가 소프트웨어의 상품화 수준이다. 국내 소프트웨어산업계를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상품화에 대한 소극성과 낙후성이다.

국내 소프트웨어업체들에 보편화된 상품화전략은 경쟁업체가 앞서 성공한 분야에 대해 뒤늦게 뛰어들거나 번들판매에 참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소프트웨어 상품화차원에서 대고객 지원 및 홍보활동이 미흡하지나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짚어봐야 한다. 소프트웨어업체들에 가장 중요한 재산은 개발과정에서 얻은 노하우 등 무형재산이며 이를 마케팅과 연계할 경우 소비자의 신뢰도나 업체와의 협력관계 등도 고려되어야 한다. 시장을 주도하는 회사들은 대개 소비자가 그 제품을 신뢰하게 만드는 회사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영어환경이 기본인 소프트웨어를 한글화하고 문서양식 등을 우리 문화에 맞게 전환하는 것을 한국화라 한다. 이같은 한국화 과정은 외국 소프트웨어업체들의 파상공세를 일정수준에서 견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개발자나 업체들이 더욱 신경을 써야 함에도 불구, 이에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지적도 경청해야 할 부분이다.

일례로 한국화 문제에서 필수적으로 나타나는 한글코드문제는 컴퓨터가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한 80년 이후 현재까지 15년 동안이나 풀지 못하고 있는 난제이며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산업이 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취약점이기도 하다.

소프트웨어산업에서 상품유통구조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큼 심각한 일도 없다. 제품의 안정적 판로가 확보돼야만 재생산과 재투자 등 건전한 기업활동이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구조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하드웨어 번들판매다. 번들판매는 기본적으로 소비자가 요구하는 제품을 한꺼번에 제공함으로써 소프트웨어업체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해 매출확대에 기여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선두업체들이 시장점유율을 의식, 출혈을 감수한 번들영업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번들경쟁은 결국 업체들의 제살깎기로 경영악화와 함께 시장질서를 무너뜨림으로써 개발자들의 의욕을 감퇴시키는 최대 요인이 되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의 고민은 유통과 영업과정에서도 집약돼 나타난다. 프로그램의 기획과 개발에 진력하고 싶지만 유통비중을 확대하고 불법복제를 단속하기 위해 애를 태워야 하는 것이 바로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개발사 입장에서 보면 유통은 자체 조직보다는 별도의 유통전문사를 통하는 것이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독자적인 유통망과 노하우를 갖고 있는 유통전문사를 활용하면 개발사들은 본업(기획과 개발)과 기술지원만을 전담할 수 있고 필요 이상으로 조직이 비대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유통채널이 발달하면 불법복제에 대한 감시 역할도 톡톡히 해낼 수 있다.

국내 소프트웨어업체들이 외국업체들에 비해 크게 뒤지고 있는 또하나의 분야가 바로 사용자교육이나 사후지원이다. 소프트웨어 상품 평가기준에는 제품의 기능과 성능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용자교육과 사후지원 과정도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소프트웨어업체는 개발분야에서는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도 제품출시 이후의 대비책에 상당한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제품교육과 관련해서도 번듯한 교육센터를 운영한다는 것은 장기적인 차원에서 준비해야 한다고 쳐도 제품의 1차 교육자료로서 매뉴얼이 부실한데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제품구입 후 사용자가 처음으로 대하게 되는 것이 매뉴얼이다. 그러나 매뉴얼이 지나치게 어려운 용어나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들로 가득찬 경우가 비일비재해 사용설명서란 이름이 무색한 지경이다.

<김상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