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업계에도 네트워크 바람 솔솔

출판업계에 네트워크 바람이 불고 있다. 수작업에서 전산화로 발전한 출판업계에 최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네트워크 출판이 등장해 앞으로 출판시장의 판도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미 외국의 네트워크 출판업체중 일부는 이미 한국에 진출해 앞선 기술과 첨단장비를 바탕으로 국내 출판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술력과 자본력에서 이들 외국업체보다 열세인 많은 국내 출판업체들은 크게 긴장하고 있다.

출판에 네트워크 기술을 적용할 경우 잇점이 많다. 우선 제작기간을 단축할 수 있고 네트워크를 이용해 출판을 해 거리 제약을 받지 않고 원색에 가까운 출판물을 만들 수 있어 기존 출판업체들로서는 경쟁력 열세를 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국내 출판업체들은 컴퓨터와 DTP소프트웨어를 이용해 필름제작, 원색분해,정판, 편집 등 상당부분 일련의 출판 과정을 전산화했지만 아직 네트워크를 이용한 출판기법은 도입하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벌써 네트워크 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대형 업체들이 등장해 출판시장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업체는 「서 스피디(Sir Speedy)」와 「퀵카피(Kwik Kopy)」, 「알파그래픽스(AlphaGraphics)」, 아메리칸 스피디(American Speedy), 「라저퀵(LAZERQUICK)」, 「파이프 프린팅(PIP Printing)」 등인데 디지털 프린터와 고속 네트워크를 구축해 글로벌 출판영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킹코스와 알파그래픽스는 이미 한국에 협력점을 개설해 국내 출판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1대에 수억원을 웃도는 디지털 프린터와 제본기, 고성능 드럼 스캐너, 워크스테이션 편집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전세계에 설립한 지점을 통해 유치한 출판물을 제작해 주고 이와 관련한 다양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사진 스캐닝에서 인쇄, 제본, 컬러복사, 원고 전송 등의 작업을 통신망으로 처리한다. 물론 지역적인 제약도 받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오지나 중국 북경 등 통신망이 설치되면 지역적 제약없이 신속하게 출판물을 유치해 제작해 줄 수 있다.

이같은 자본과 기술력을 확보한 대형 출판업체로 인해 서울 충무로나 을지로 일대를 중심으로 구식 출판사업을 벌이고 있는 영세 인쇄업체들과 정판사, 이미지프로세싱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영업에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내년부터 출판사업이 「중소기업고유업종」에서 해제돼고 본격적인 시장개방상황에 돌입하면 소싱능력과 자본, 정보력에서 뒤떨어지는 국내 출판계는 서둘러 변화하는 네트워크 출판업체 등장에 따른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형편이다.

네트워크 출판을 할 경우 기획, 제작, 인쇄 등 출판과 관련한 모든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고품질의 출판물을 제작할 수 있다.

알파그래픽스의 경우 오는 2천년까지 세계 각국에 4백75개의 지점을 확보한다는 원대한 야심을 발표한 바있다. 알파그래픽스의 CEO인 「마이클 이트(Michael Witte)」는 「이같은 네트워크 출판은 종업원의 기술이나 지점마다의 비즈니스 전략, 장소에 상관없이 현지에서 동일한 품질의 출력물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업계획의 실현을 위해 이미 독일과 사우디 아라비아, 칠레, 인도네시아 폴란드 등 전세계적으로 지점을 설치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네트워크를 이용한 출판은 미국에서 올해 열린 아틀란타 올림픽에서 이미 선보였다.

이스라엘에 본사를 두고 있는 「프레스 포인트(Press Point)」사는 한국을 포함한 영국과 일본, 브라질, 독일 등 세계 각국의 신문을 현지 인쇄해 배포하는 시범서비스를 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회사는 항공이나 해운운송에 의존하지 않고 세계각국의 신문사들로 부터 받은 편집 데이터를 고성능 프린터로 인쇄, 타블로이드판형태로 경기장과 호텔 등지로 배포했다. 운송 따른 비용과 시차에 관계없이 당일 신문을 지구 반대편에서도 즉시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프레스 포인트는 세계 신문사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본격적인 활용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컴퓨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에 들어가는 매뉴얼이나 가전 제품 매뉴얼도 네트워크 출판이 가능하다. 네트워크 출판을 하면 세계각국의 언어로 제조사에서 매뉴얼을 제작할 필요없이 원고만 제공하고 인쇄는 현지에서 출력기로 하면 돼 잇점이 많다.

광고기획사도 네트워크 출판 수혜자중 하나다. 전세계적인 마케팅과 아웃소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광고카탈로그나 기업소개서의 경우도 한국가에서 제작할 필요없이 현지에서 디자인과 인쇄, 배포 모두를 수행할 수 있다.

다만 디지털 프린터를 이용하면 1백부를 인쇄하는 비용이나 1만부를 인쇄하는 비용이 같아 인쇄할수록 비용이 줄어드는 전통적인 출판과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네트워크 출판은 다품종 소량출판에 적합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일정기간은 신구 출판프로세스가 공존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또 네트워크 출판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통신인프라의 구축과 통일한 폰트, 세계표준 코드규약인 유니코드를 기반으로한 워드프로세서 및 DTP소프트웨어의 데이터 포맷 통일이 선행돼야한다. 현재의 컴퓨터 소프트웨어에서는 세계 표준으로 삼을 만한 데이터포맷이 없다.

그렇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컴퓨터 제조사,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의 노력이 진행중이다. 포토숍으로 유명한 아도브는 이미 문서, 홈페이지에서 표준적인 데이터포맷인 아크로뱃과 정판, 원색분해 등 출판과정을 자동화시켜주는 아도브 오픈(Adobe OPEN)을 기반으로하는 「버추얼 네트워크」 개념을 고안했다. 세계 어디에서 제작된 문서라도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출판 네트워크를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다.

또다른 전자출판업체 「4SIGHT」사는 종합정보통신망(ISDN)을 기반으로하는 네트워크 출판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이회사는 ISDN망을 이용, 세계 각국에 산재해있는 디자인 용역사와 원색분해업체, 컨설턴트, 마케팅회사, 편집대행사를 ISDN망으로 엮어 네트워크 출판을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페이지메이커와 함께 전세계 전자출판소프트웨어를 양분하고 있는 쿼 익스프레스사도 쿼에 인터넷 표준 데이터 포맷인 SGML과 HTML를 포함시켜 네트워크 퍼블리싱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코닥이나 제록스, 인디고, 자이코 등 프린터 전문업체들도 이에 대비해 고속 고해상도를 제공하는 출력기를 속속 발표하고 있다.

서 스피드나 알파그래픽스, 파이프 프린팅과 같은 네트워크 퍼블리싱회사들도 보다 빠른 시기에 시장을 선점코자 지사설립에 주력하고 있다.

대다수의 전자출판관계자들은 이같은 네트워크 출판은 자본력을 갖춘 기업간의 「자본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고 우리처럼 영세한 출판업체가 많은 나라의 경우 경쟁력 확보를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규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