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부터 5일 동안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는 예상대로 정보기술협정(ITA)이 최대 이슈로 부각된 가운데 폐막됐다.
정부조달문제, 경쟁정책, 무역과 투자, 노동문제 등이 핵심적 사안으로 부각된 이번 각료회의에서는 우선 정부조달과정의 뇌물수수 등 부패가능성을 제거하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정부조달 잠정 협정안에 합의, 우리에게 상당한 통상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이 높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구체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엄청난 정부조달 시장에 외국기업의 참여를 국내기업과 동등하게 자격을 부여하게 되는 이 협정안이 발효되면 정부의 외국기업 참여에 대한 규제조치는 대폭 완화될 전망이다.
또 선진국과 개도국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돼 각료선언 합의 도출을 위한 공식 또는 비공식회의가 계속된 정보기술협정 문제는 각국의 산업발전단계를 고려, 제한된 범위 내에서 무관세화의 시기를 2000년 이후로 연장할 수 있게 하는 한편 품목별 관세 인하안을 내년 3월 말까지 제출하며 협정 발효시기는 오는 7월로 하는데 합의했다.
또 대상품목은 2백2개 정보기술제품으로 하기로 했으며 품목별 관세 인하는 오는 2000년까지 4단계에 걸쳐 추진키로 함으로써 정보기술 제품에 대한 무세화 시기 등 개방 일정 마련이 발등의 불로 다가왔다.
정부는 이와 관련, 상대적으로 열악한 산업이거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품목인 컴퓨터, 교환기, 전송장비 등에 대해서는 이행기간의 연장 등 산업보호를 위해 무세화 일정을 최대한 미룬다는 방침을 세우고는 있으나 어느만큼 실효를 거둘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또 이번 각료회의에서는 무역과 투자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 즉 투자자유화에 대한 검토를 WTO 차원에서 시작하고 이를 위해 작업반을 설치하는 데만 합의했고 관심을 모았던 노동기준 문제는 정치적 선언 수준의 내용만을남기는데 그쳤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결국 이번 각료회의는 선진국의 자국경제 실익을 달성한 회의에 그쳤다는 평가가 절대적이다. 정보기술협정과 정부조달물량 문제를 집중 다룬 것은 모두 선진 강대국들 눈앞의 실익에 의한 결과치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보기술협정 체결은 WTO 출범과 함께 각국이 개방 일정계획을 담은 양허계획에도 불구, 강제됐다는 점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돼야 할 것이다. 이는 연간 6천억달러에 이르는 교역시장이 새롭게 형성된다는 점을 간파한 미국과 EU, 일본, 캐나다 등 선진국들의 논리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앞으로 WTO 회의의 전도를 쉽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이같은 선진국들의 자국이익에 대응할 수 있는 지역간 협의체 및 개도국간 협력체제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이번 각료회의에서 중국, 말레이시아 등 주요 개도국들은 선진국의 정보기술협정 추진에 강력히 반발, 그나마 일정부문의 양보를 받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경쟁정책에서 반덤핑조치 등 반경쟁적 무역조치를 포함시킨 것은 미국, EU 등 선진국들이 자의적으로 반덤핑조치를 취할 수 없게 했다는 점에서나름대로 우리의 성과로 꼽을 수 있겠다.
<모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