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회가 급진전되면서 효과적인 정보 전달의 필요성도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더욱이 과거 단순한 문자 위주의 정보전달 방식에서 화려한 영상이 메시지 전달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지금 이러한 시각정보의 비중은 더욱 커지고 다양한 영상 표시기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중 평판 표시장치 기술의 진보는 눈부시다.
이와 관련, 발광 폴리머(LEP)가 박막 트랜지스터 액정디스플레이(TFT LCD)에 이어 차세대 평판표시기술로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출자로 설립된 케임브리지 디스플레이 테크놀로지(CDT)社가 개발한 이 LEP는 일종의 「백열 플라스틱」으로 상용화에 성공하면 지금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훨씬 선명한 컴퓨터나 TV 화면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LEP는 플라스틱 자체가 빛을 내기 때문에 1백80도의 넓은 각도에서 화면을 볼 수 있도록 해 현재 고성능 노트북에서조차 화면이 흐릿해지는 현상을 해결할 수도 있다.
CDT社의 대니 챕챌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차세대 TV나 컴퓨터 화면은 어떠한 각도에서든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여기에 LEP가 핵심적인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CDT社는 LEP 기술이 상용화되면 현재 확대일로에 있는 평판디스플레이시장에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스탠포드 리소스社에 의하면 현재 2백60억달러 정도인 시장규모는 오는 2000년께 4백20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CDT는 결국 LEP가 현재 디스플레이 시장의 주종을 차지하고 있는 LCD와 LED를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몇몇 획기적인 발상이나 발명의 과정이 그러하듯이 이 LEP기술 개발도 어느날 우연한 계기로 단초가 만들어졌다. 지난 89년 어느날 저녁 케임브리지대학의 유명한 카벤디시연구소에 있는 한 연구원인 제레미 뷰로우 박사는 작업을 끝내고 연구실 불을 끈 후 문을 나서려는 순간 연구실의 작업 테이블에서 빛을 발하는 희미한 발광체를 발견했다. 그 백열광은 여느 빛과는 다른 특수한 것이었고, 뷰로우 박사는 그동안의 작업에 이상이 있었나 싶어 이를 알아 보려고 다시 연구에 착수했다.
원래 일부 플라스틱은 폴리머라는 긴 분자 체인으로 구성돼 특정한 조작상태에서만 전기를 전도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뷰로우 박사는 이 플라스틱을 반도체로 사용하는 실험을 해 왔다. 그런데 이 폴리머 분자를 다른 구조로 배열하면 전기를 전도할 뿐만 아니라 색채도 발산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 플라스틱 조각을 액체로 용해해 표면에 펴 바른 후 전기를 흘림으로써 백열광을 만든 것이다.
그후 뷰로우 박사는 전세계에 일련의 LEP기술에 대한 특허 출원을 신청했다. 이 기술의 상용화를 위해 카벤디시연구소는 초기 기술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점 해결에 총력을 기울였다.
물론 LEP 기술의 상용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아직 많다. 그 중 하나가 청색소자를 만들어 내는 것. 원래 백열 플라스틱이 적색, 녹색, 노란색을 만들어 내지만 청색은 파장이 짧기 때문에 만들기가 가장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초기에 CDT는 짧은 시간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약한 청색소자만 만들었다. 자연히 발광효율도 낮아 상용화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CDT의 마크 거스티치 마케팅 이사는 『자연상태에서는 청색을 만들기 어렵다. 우리는 그 부분에서 난관에 봉착했다』며, 고충을 털어 놓았다.
그러나 CDT는 그동안 꾸준한 기술향상 노력과 함께 현재 청색소자를 전문으로 만들어 내는 화학업체들과 협력관계를 맺음으로써 돌파구를 만들고 있다.
또한 아직 초기단계에도 불구하고 기술면에서 거물급 업체들의 조언을 받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은 무한한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선 아콘컴퓨터의 창업자인 허먼 하우저와 애플의 前최고경영자(CEO)였던 존 스컬리와 케임브리지 카벤디시연구소 등이 강력한 후원자들이다.
한편, CDT는 LEP를 직접 제조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이 기술을 디스플레이 업체들에게 라이선스로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이미 필립스 일렉트로닉스와 거액의 라이선스계약을 체결했다. 필립스는 지난 4년동안 LEP 기술개발에 주력해 왔으나 CDT의 기술을 이용하지 않고는 획기적인 진전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CDT는 이와 함께 듀폰과도 라이선스 협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LEP의 상용화가 그렇게 급진전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LEP 관련업체들은 LEP기술이 상용화되더라도 당분간은 휴대전화나 전자제품의 디지털 화면 등 일부 제품의 소형화면에 국한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컴퓨터정도 크기의 화면에 채용되는 것은 2000년에나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구현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