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흥행작)을 앞세운 할리우드 액션비디오들이 매달 대여용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비자직판 비디오시장에서도 히트작은 대부분 외산 타이틀이 차지하고 있다. 또한 백화점, 서점, 비디오숍 등 전시매장을 통해 판매 6개월 이내에 3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국산타이틀은 거의 없다. 올해의 경우 지난 10월 만화비디오로 출시되어 2달여만에 6만장 팔려나간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이 소비자직판 비디오시장의 유일한 국산 프로그램 흥행작이다.
지난 90년대 초 「바둑」 「에어로빅」 「자연탐사」 「가정의학」 「취미생활」 「태권도」 등 다양한 아이템의 국산타이틀 제작붐을 일으켰던 성인용기획물 역시 최근 2, 3년 사이에 흥행은 고사하고 신작 출시마저 뜸한 상태다. 교육물은 영어, 산수, 글짓기, 노래방비디오 등 유아용 학습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국산제품이 꾸준히 출시되고 있으나 눈에 띄는 성공작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일부 타이틀은 단순히 TV 방송내용을 짜깁기 편집하는 등 성의없는 내용으로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국산 프로그램이 외면당하는 이유는 제작사들이 대부분 영세하기 때문에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 내기에는 자본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에서 요인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소비자직판용 비디오시장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국산타이틀 개발에 무리한 제작비를 투입한다는 것은 중소 프로덕션으로서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소비자직판 비디오 전문업체 B사의 경우 방화흥행작 판권이 5백만원에 불과하던 지난 87년 『열 편의 대여용비디오보다 한 편의 국산기획물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욕으로 5천만원을 쏟아부어 국산 기획물 시리즈 「국기태권도」를 제작했다가 홍보비조차 건지지 못했던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대기업들이 소비자 직판시장에 뛰어든 현시점에서도 국산타이틀 개발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 소비자 직판시장 개척에 나서 어린이 성교육 시리즈 「신세대자녀 성교육」과 스포츠 기획물 「리드베터의 골프레슨」 등 두 편의 외산 타이틀을 출시한 삼성영상사업단은 내년도에도 몇 편의 해외판권 구매를 통한 히트작을 계획하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직배사의 판매대행 또는 해외판권 구매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산 타이틀 「헬로키티」 시리즈 2편과 미국 데뷰사의 「영어해결사」를 출시한 선경그룹 산하 SKC가 「아기공룡둘리, 얼음별 대모험」 비디오판권 입도선매를 위해 제작비 일부를 지원한 것이 대기업의 유일한 측면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유아 성교육 프로그램 「아름다운 성」을 국내 제작한 중소프로덕션 RGB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해외에서 흥행성을 인정받은 제품으로 히트작을 낸다면 일단 소비자 직판시장을 개화시킨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이것이 국산타이틀 개발과 병행되지 않을 경우 대여시장과 마찬가지로 자생력을 기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앞으로 유통망 체질개선과 함께 국산프로그램의 개발을 위해서는 단순히 소비자직판용 비디오시장을 겨냥한 타이틀 제작보다는 이른바 「원소스멀티유스」 개념을 도입해 지상파TV, 케이블TV, DVD, 게임 등을 동시에 기획하고 각 분야의 대기업 및 중소프로덕션이 협력체제를 모색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선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