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경] 김광호 삼성전자 부회장 왜 물러났나

지난달부터 끈질기게 나돌았던 김광호 삼성전자 부회장(56)의 「퇴각설」이 사실로 나타났다. 이유는 대략 세가지로 반도체 가격하락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데다 미국 AST 경영부진, 세대교체 등으로 집약된다.

반도체 문제는 김광호 부회장이 국내에서 몇 안되는 전문가라는 점에서 그 책임을 면키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사철인 지난 79년 9월 TV사업부에서 반도체사업부로 자리를 옮긴 후 반도체 사업본부장(81년 7월), 반도체부문 대표이사 부사장(87년 3월), 사장(90년 1월), 그리고 92년 12월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에 올라서기까지 13년 이상 반도체에만 매달려온 인물이다. 그래서 반도체 대호황을 맞은 지난해 그의 성가는 그룹내에서도 절정에 달했다.

김 부회장은 그러나 지난해말부터 초조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말 본지와의 「새해 새설계」 인터뷰 때 그는 반도체 가격하락 기사(본지 1995년 12월8일 1면)에 대해 아주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반도체 D램 가격하락은 올초(95년)부터 예상했던 일이지만 실제로는 가격하락 곡선이 둔하게 움직이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더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이를 전제로 한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전문지에서 이를 앞장서 보도함으로써 가격하락을 부채질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가격하락 분위기를 저지하기 위해 올초에 대규모 기업설명회를 개최, 반도체 시장가격 변동에 대해 「승자와 패자」의 논리를 들어 설사 가격이 떨어진다 해도 삼성은 만반의 준비가 돼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반도체값은 가파르게 하락했고 이로인해 삼성전자의 매출과 이익이 곤두박칠쳤음은 물론 우리나라 수출둔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4억달러 이상을 들여 인수한 미국 AST의 적자누적은 김 부회장을 물러앉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AST에 대해 정밀분석한 실무진이 적극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수결정을 내린 것에서부터 지금까지 연속 10분기 동안 적자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것 등이 김 부회장에게는 돌이키기 어려운 경영실책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이건희 회장의 「세대교체」 방침까지 가세해 김 부회장은 회장으로 승진하기는 했지만 이제 윤종룡 일본본사 사장(52)에게 바통을 물려주고 그룹 미주본사로 나가 원로로서의 영향력을 발휘해야 할 입장이다.

<이윤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