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96년 우리 영화계는 유난히 불미스러운 사건들로 얼룩진 한 해였다. 4월에 터진 대종상 파문은 영화계 인사들에게 자괴감을 안겨 줬으며, 영화계의 대부 곽정환씨와 이태원씨의 잇단 구속으로 불어닥친 사정바람은 충무로의 몰락을 재촉했다. 따라서 국내 영화산업은 대기업과 외국 영화메이저들로 재편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공륜의 가위질이 위헌」이라는 헌재의 판결 이후 한 목소리로 영화진흥법 개정을 끌어내야 할 영화인들이 심의주체와 등급외전용관 설립을 둘러싸고 극한대립을 벌이고 있어 애써 얻은 창작의 자유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할리우드의 영화는 올해도 여름극장가를 휩쓸었고, 영상산업에 앞다퉈 진출한 대기업들은 우리 영화의 기술향상과 인력양성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보다는 해외영화의 판권구매와 흥행을 겨냥한 트렌드 영화제작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이같은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올 한 해 우리 영화가 거둬들인 질적 성장은 괄목한 것이다. 「은행나무 침대」가 신년 벽두부터 흥행돌풍을 일으켰으며, 「투캅스2」가 전편에 이어 빅히트를 기록했다. 또한 「아기공룡둘리」는 국산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임순례, 홍상수 등 30대 젊은 감독들의 등장은 21세기 영화계를 짊어질 뉴웨이브 감독군이 형성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예술영화 전용관의 정착과 부산 국제영화제의 성공적인 개최는 영화를 보는 관객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쾌거였다.
수출시장도 호조를 보였다. 「삼공일 삼공이」는 미국시장을 공략했고, 「개같은 날의 오후」는 칸, 밀라노 등 해외견본시에서 호평을 받은 이후 현재 판권계약을 추진 중이며, 「은행나무침대」는 국내 최초의 직배계약을 통해 홍콩에 진출했다.
비디오 영화계와는 달리 올해 비디오시장은 제일제당, GTV 등 신규업체들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침체국면을 맞았다. 3천억원을 고비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던 대여용비디오 시장은 올해 약 2천8백억원에 머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메이저 비디오유통사의 집중현상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데 우일영상, SKC, 시네마트, 스타맥스, 드림박스, CIC, 영성프로덕션, 새한미디어 등 8개 업체가 전체시장의 83%를 차지하고 있다. 우일영상과 시네마트를 거느린 대우진영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스타맥스와 드림박스가 포진한 삼성군단을 따돌릴 전망이다.
그러나 이들 대형유통사중 직배사인 CIC만이 매출의 50% 이상을 판매이익금으로 본국에 송환할 정도로 견실한 이익구조를 보이고 있을 뿐, 나머지 7개 국내 업체는 매출규모에 상관없이 큰 수익을 내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14.5% 내외의 수수료를 챙기는데 불과한 할리우드 메이저사와의 판매대행계약은 유통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자구책에 불과할 뿐 거의 수익을 가져다 주지 못하고, 해외 견본시의 판권가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판권을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국내 유통업체들의 구조적인 취약성은 개선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또한 대여료 덤핑경쟁으로 위기에 몰린 비디오숍들은 B급, C급 작품들을 외면함으로써 타이틀당 평균판매량이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특히 「밀어주기」 「꺾기」 등 잘못된 관행으로 일부 흥행작의 재고부담이 가중됨으로써 대여용 비디오시장은 총체적인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이에 비해 전시판매와 방문판매를 합쳐 약 8백억원 규모로 추산되는 소비자직판비디오 시장은 대기업들의 신규참여로 차츰 활기를 띠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낙후된 유통형태인 방판물량이 전체시장의 65%선을 차지하는 등 체질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음 반 한편 올 한 해 음반업계의 이슈는 「사전심의의 폐지」와 「유통시장의 구조개편」. 오랫동안 가요발전에 족쇄로 작용해 왔던 「가요사전심의」가 폐지되면서 가요의 폭이 깊어졌다.
그러나 사전심의에 따른 문제도 없는 것은 아니다. 가요심의 폐지 등의 환경개선에도 불구, 청소년층을 겨냥한 인기 댄스음악이 가요시장을 주도하거나 연이은 인기가수의 표절파동시비 등으로 가요시장이 왜곡되고 있다. 특히 적절한 여과장치가 없는 데 따라 저질 및 폭력 등을 담은 내용이 등장하고 있으며 단발적인 흥행만을 겨냥, 일본곡을 표절하는 현상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아울러 음반유통업체들의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도매상들이 몰락한 한 해였다. 96년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터진 신나라레코드의 「아가동산」에 대한 검찰 수사는 국내 유통업계를 일시에 재편토록 강요하고 있다.
국내제작 음반을 거의 전량 소화해 온 도매업계는 올초부터 신나라레코드물류(이하신나라)와 전국음반도매상연합회(이하 도매상연합회)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했다. 양측은 음반도매 주도권 장악을 위한 과열경쟁을 거듭한 끝에 지난 7월 공정거래위원회에 맞제소하는 등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이 싸움에서 승리를 거뒀던 신나라는 하반기들어 시장점유율을 전체 음반도매량의 30%선으로 끌어올렸다. 이와 반대로 경쟁 도매업체들은 파산하거나 사업을 축소해야 했다. 그러나 12월 막바지에 터진 아가동산 사건으로 국내 최대 유통업체인 신나라의 존립이 불투명해졌다. 음반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존질서가 무너짐에 따른 혼란가중을 우려하면서도 음반유통 시장판도가 외국 대형유통업체와 대기업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음반유통의 핵심역할을 해야 하는 대형 소매점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형 소매점들은 소비자들의 구매욕구를 충실하게 반영해 다양한 음반을 구비하기보다는 일부 인기음반의 물량확보와 덤핑에만 힘쓰는 등 유통 대형화, 선진화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한 해였다.
【영상정보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