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원료의 조달에서부터 폐기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에 걸쳐 환경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는 「전과정 환경영향평가」(LCA;Life Cycle Assessment)가 가전업계의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LCA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은 현재 가전3사에서 활발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전자레인지, 냉장고 등에 이 기법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내년부터 전 가전제품으로 확대할 예정이며 대우전자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LCA를 도입하려는 가전업체들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LCA는 국제 환경표준규격인 「ISO 14000」이 규정한 5가지 항목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LCA는 환경경영시스템(EMS), 환경라벨링(EL), 환경성과평가(EPE)와 같은 다른 항목의 근간을 이루고 있어 「ISO 14000」의 핵심 항목으로 손꼽히고 있다.
외국에서는 가전제품에 환경마크를 부여할 때 LCA를 고려한 기준을 사용하며 환경라벨링에 대한 규격도 LCA를 바탕으로 제정하고 있다.
국내 가전업체들이 LCA를 도입하게 된 것은 날로 강화되고 있는 환경 규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LCA는 제품에 관한 각종 환경규제 가운데 핵심 요소를 뽑아내는 기법인데 업체들은 이를 바탕으로 관련 투자를 집중시킬 수 있다. 제품개발 과정에서 나타나는 낭비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제품의 성능에 악영향을 줄 부분을 미리 제거해 경쟁력 있는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
당장의 일은 아니지만 몇년 뒤에는 소비자단체나 환경단체가 제조업체에 제품과 관련한 각종 데이터를 요구하는 시대가 열릴 전망인데 LCA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갖고 있으면 이에 대응할 수 있다.
일반인들은 대체로 기업의 환경 투자에 비용이 많이 들 것으로 생각한다. 소각로나 폐수정화시설을 설치하는 것과 같은 「종말처리(End of Pipe)」라는 기존 환경보전 개념에서 보면 이같은 생각이 그릇된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LCA는 그 성격이 다르다.
기업이 LCA를 도입할 때 쓰는 비용은 초기의 컨설팅 비용과 소프트웨어 개발비 뿐이다. 또 데이터베이스를 한번만 구축하기만 하면 이후 들어갈 비용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반면 LCA를 도입하면 부품수의 축소, 공정 개선을 통해 원가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는데 부대 효과까지 포함하면 실익은 매우 크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LCA는 환경규제에 대한 더욱 적극적인 형태의 대응인 셈인데 외국에서는 필립스, 소니, NEC 등 선진업체 대부분이 LCA에 대한 방법론을 확보해놓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이제 막 도입에 나선 걸음마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편인데 특히 LCA의 기본이 되는 원자재에 대한 데이터 확보에서 취약하다.
삼성전자의 김승도 선임연구원은 『전자레인지를 대상으로 처음 LCA를 도입했는데 원자재에 대한 세밀한 데이터를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어 초기 데이터수집에만 많은 시일이 걸렸다』고 털어놓았다.
이같은 어려움이 있지만 국내 가전업체들은 앞으로 LCA를 서둘러 도입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선진국은 최근 환경오염을 발생시킬 수 있는 가전제품 유입을 철저히 막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내년부터 가전제품을 대상으로 환경표지인증제도를 도입하고 폐가전제품에 대한 처리를 의무화하는 등 환경 규제를 대폭 강화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으로 인해 환경기준과 환경정책을 더욱 강화해야 할 입장이어서 LCA의 도입은 가전업체들에 있어서 불가피한 선택이 되고 있다.
<신화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