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컴퓨터 토정비결

조선 성종 때 조위(曺偉)라는 학자가 있었다. 그는 1495년 대사성으로 있을 때 성리학자 김종직문집의 첫 머리에 「조의제문」을 수록토록 한 사람이다. 그는 이로 인해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났을 때 연산군으로부터 미움을 사 목숨이 위태롭게 됐다. 때마침 명나라에 성절사로 다녀오다가 요동에서 이 소식을 듣은 그는 지역의 유명한 점쟁이를 찾아가 앞날에 대해 물었봤다. 그를 본 점쟁이는 말없이 「천층 물결 속에서 몸을 뒤집어 나오고 바위 밑에서 사흘밤 자기를 기다린다」는 내용의 시(詩)한 수를 써 줬다.

조위는 귀국 중 의주에서 투옥됐다가 정승 이극균의 간청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는 「천층 물결 속에서 몸을 뒤집어 나온다」고 했던 점쟁이의 예언이 적중했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바위 밑에서 사흘밤 자기를 기다린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고 1503년 적소에서 병으로 죽었다.

그러나 조위는 이듬해 연산군 10년 일어난 갑자사화 때 끝내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해 바위 밑에 사흘 동안 방치됐다. 「바위 밑에서 사흘밤 자기를 기다린다」는 요동의 점쟁이말대로 된 것이다.

이쯤되면 요동의 점쟁이는 상당히 용한 점쟁이인 것 같다.

연말을 맞아 서울의 몇몇 가전 유통점들이 고객유인 판촉행사로 「컴퓨터 토정비결」 코너를 마련, 매장방문고객들에게 내년도 운수를 뽑아주고 있다. 일부 저술가들은 새해에 맞춰 미래예측 서적들을 출간하고 있으며 시내 각 대형 서점의 역학서적 코너에는 책을 사러 나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각 경제연구소는 최근 내년 경기전망 자료들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그래도 이것까지는 연말이면 으레 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전자관련 업체 일부 경영인들이 역술인들을 찾아 내년 사업운수를 알아보고 있다는 소식이다.

물론 지난 한해의 의미를 되새기며 다가오는 해의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갖기 위한 것이라면 괜찮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경영인들의 역술인 찾기는 경기불황이 계속되면서 미래예측이 불가능해지고 명예퇴직제 등 어수선한 기업환경의 분위기가 연출해 내는 바람직하지 못한 풍조나 아닌지 걱정된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이는 신의 뜻이라는 생각도 문제가 있지만 기업환경이 어려워졌다고 기업경영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역술인에게 의지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