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왕>이라는 희한한 제목의 영화를 만든 사람은 김용태이다. 김용태는 신인감독이며 <미지왕>은 그의 데뷔작이다.새로운 형식에 도전하는 역량있는 신인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내용이 따라 붙지 못하는 형식상의 패기가 조금은 유치해 보일지라도 단지 유치한 것만으로 끝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김용태 감독의 <미지왕>이 그렇다.다른 영화에서라면 분명 유치하게 여겨질 장면들이 이 영화에서는 희한하게도 웃음과 재미를 주고 있다.재능이 아닐 수 없다.
<미지왕>에는 이렇다 할 통일된 줄거리는 없다.그래도 영화의 뼈대라 할만한 것이 있긴 하다.이 영화는 결혼식날 예식장에서 실종된 신랑을 찾는 이야기다.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고경찰과 형사가 동원되어 신랑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짧게 설정된 도입부와 역시 짧게 설정된 끝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는 주인공이며 실종된 신랑인 왕창한(조상기 분)에 대한주변인물들의 회고이자 인물평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모든 장면 하나하나는 통상적인 영화처럼 사건의 인과 관계에 의해 연결된 것이 아니라 문학적 표현을 빌리자면,의식의 흐름 기법을 쓰고 있다는 것이 주목될 만하다.다시 말해서 이영화는 한 장면 한 장면이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통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상상 자유, 예측 불허」라는 이영화의 광고 문구는 따라서 그다지 과장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한다.확실히 이 영화는 영화적 상상력이 어떠한 것인지를 창의적으로 보여준다.
<미지왕>은 사라진 신랑을 찾는 코미디이지만, 그러한 형식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것은 이 시대에 대한 좌충우돌의 풍자이다. 그풍자에 의하면우리사회는 지금 말초적인 쾌락만을 지나치게 추구하며 사람들은 모두 환자가 되어가고 있다. 남자는 바람둥이며, 여자는 발정난 암캐다. 그리하여남자는 여자를 믿지 못하고 여자는 남자를 믿지 못한다. 믿음이 없으므로보다 젊고 보다 아름다운 육체에 대한 탐닉만 이루어질 뿐이다.
이 영화가 비판적으로 다루는 대상은 그 중에서도 여자이다. 여자들은 선천적으로 바보이거나,질투 때문에 남자에게 고문을 가하는 자이거나 화대 안 받는 창녀이거나,연하의 남자라면사족을 못쓰는 노처녀이거나,일을 빙자하여 육체를 제공하는 자이다. 여자들은 먼저 프로포즈까지 해 가며 남자를 원하지만 남자는 여자의 욕망을 좀처럼 만족시켜 주려 하지 않는다. 신랑이 사라지는 것은 남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여자들의 과도한 욕망 때문이다.따라서 신랑의 사라짐은 남겨진여자들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계시가 되고 수사는 고해성사가 된다. 주인공왕창한은 첫사랑을 찾아 떠났으며 순수한 사랑이 없어진 시대를 고발하는 순교자였음도 밝혀진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미지왕>을 해석하는 일이란 부질 없는 짓이다. 이 영화는 일관된 해석을 할 수 없도록 장치되어 있으므로 관객은 그저 웃고 즐기면서 자기 나름 대로의 시선을 확보하면 그만인 것이다.자신의 시나리오로, 신인 배우들만으로, 패기있는 작품을 만든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채명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