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병자년이 어느덧 저물어간다. 96년 올해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국내외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뉴스가 많았으며 전자산업 전반에도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들이 적지 않은 한 해였다. 국내적으로는 전반적인 경기침체의 여파로 인해 82년 이후 처음으로 전자산업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서 충격을 안겨줬으며 대우전자의 톰슨인수 파동으로 술렁이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나라 전자산업계는 세계 최초의 CDMA방식 디지털 이동전화시스템 개통과 디지털 위성방송 실시 등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국제적으로는 D램가격 폭락과 ITA협정 체결, 저가 PC(NC, 넷PC)경쟁 본격화 등 큰 파장을 끼쳤던 사건이 연이어 발생해 관심을 모았다. 전자신문사가 격동의 96년을 보내면서 선정한 국내외 10대 뉴스(무순)를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1)국내 첫 위성방송 실시
지난 7월 1일 KBS가 2개 채널에 대해 위성방송 전파를 발사함으로써 안방의 국내시청자들도 이제 위성방송시대를 맞게 됐다.
「무궁화위성」을 통한 디지털 위성방송 실시로 난시청지역이 해소되고 최대 24개의 다채널방송이 가능하게 됨은 물론 시청자들도 레이저디스크 수준의 화질과 콤팩트디스크 수준의 선명한 음질을 즐길 수 있게 됐다.
특히 방송용 중계기를 통한 위성방송시스템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구축함으로써 송신에서 수신시스템에 이르기까지 국내 방송기술이 이제 선진기술 수준에 진입했음을 보여줬다.
고기술, 다채널로 압축되는 위성방송은 그 잠재된 폭발력과 함께 지상파, 케이블TV를 양대 축으로 성장해 왔던 국내 방송산업의 구조개편을 촉발함은 물론 프로그램산업의 발전에도 일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2)전자산업 수출 첫 감소세 기록
전자산업 수출이 82년 이후 사상 처음으로 감소를 기록했다. 당국의 잠정추계에 따르면 올 전자산업 수출은 가정용, 산업용, 부품 등의 분야에 4백10억6천만달러로 전년대비 4.4% 감소한 수준에 머무를 전망이다. 해마다 평균 20∼30%의 고성장세를 구가해 온 전자수출이 제자리걸음도 못한 채 뒤로 물러선 것이다.
지난해 40%의 성장률을 기록할 때만 해도 올 전자산업 수출 5백억달러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반도체의 가격이 올 들어 계속 하락하면서 수출환경은 하루아침에 한랭전선으로 변해버렸다. 수출 관계자들은 이로 인해 일년내내 가슴을 조이며 실적쌓기에 급급해야 했다. 반도체 수출에만 의존하는 전자수출 구조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등장한 한 해였다.
3)27개 신규통신사업자 대거 선정
신규통신사업권 경쟁은 올해 정보통신업계의 최대 쟁점이었다.
개인휴대통신(PCS)사업권을 놓고 LG그룹과 삼성-현대연합이 맞붙었던 장비 제조업체군에서는 LG그룹의 LG텔레콤이, 한솔-데이콤, 금호-효성, 기협중앙회가 겨뤘던 장비 비제조업체군에서는 한솔-데이콤연합인 한솔PCS가 각각 사업권을 거머쥐었다.
또 기아, 동부, 아남, 한진 등 4개 중위권 재벌이 맞부닥쳤던 주파수공용통신(TRS) 전국사업권은 아남그룹 주도의 아남텔레콤이 주인이 됐고, 국제전화 제3사업권은 롯데, 일진 등 8개 업체가 연합한 한국글로벌텔레콤(온세통신의 개명)이 차지하는 등 7개 분야 27개 통신사업의 주인이 가려졌다. 하지만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정부의 잦은 기준변경과 업체들의 과열경쟁 등 적지않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4)세계 최초 CDMA방식 디지털 이동전화서비스 개시
한국이동통신이 세계 처음으로 1월 초부터 인천, 부천지역에서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 디지털 이동전화 상용서비스를 개시했다. 이어 4월 초부터는 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이 수도권과 대전지역에 서비스를 시작, 본격적인 디지털 이동전화시대를 열었다.
지난 89년 국책과제로 선정된 이후 6년간 총 8백70억여원의 개발비를 투입한 CDMA시스템의 상용화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일약 무선통신의 강국으로 뛰어올랐다.
CDMA방식은 본격적인 상용서비스를 개시한 지 9개월여만에 1백만명에 가까운 가입자를 확보, 완전한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CDMA 개발에 참여했던 국내 통신장비업체들은 이를 기반으로 개인휴대통신 시스템을 개발, 무선통신의 원조인 미국시장 진출에 성공하는 등 국내 통신업계의 주력 상품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5)대우전자 톰슨멀티미디어 인수파동
프랑스 정부는 톰슨그룹의 민영화를 추진하던 지난 10월 16일 톰슨멀티미디어의 인수업체로 대우전자를 지명했으나 그로부터 2개월도 안돼 민영화 추진절차를 중단했다.
프랑스 정부가 톰슨멀티미디어를 대우전자에 매각하기로 발표한 후 톰슨멀티미디어 노조, 야당, 일부 언론 등이 이를 대대적으로 반대하고 나서자 결국 민영화 작업을 중단해버린 것이다.
대우전자가 유럽 굴지의 가전업체인 톰슨멀티미디어를 인수, 세계 최대의 컬러TV 생산업체로 떠오르려는 꿈은 프랑스 정부가 신의를 져버림으로써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져 버렸다. 프랑스 정부가 부당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대우에의 톰슨매각을 거절한 이 사건은 결국 한국 정부가 프랑스에 경제적인 보복조치를 단행하는 데까지 비화됐다.
6)아남산업 FAB사업 진출
아남산업의 반도체 일관가공(FAB)사업 신규참여는 국내 비메모리사업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지난 9월 초 김주진 아남그룹 회장(사진 왼쪽)은 엔지보스 美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社 사장과의 공동발표를 통해 『아남그룹은 TI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차세대 유망 비메모리 제품인 디지털 시그널 프로세서(DSP)를 97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생산키로 하고 총 8천억원을 투자해 97년 3월까지 현 부천공장에 8인치 웨이퍼 월 2만5천장 가공규모의 전용 공장을 설립키로 했다』고 발표, 국내외 반도체업계의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그간 반도체 조립에만 주력해 온 아남의 DSP 생산참여로 국내 반도체 일관가공업체는 삼성, 현대, LG, 대우, 한국전자 5개에서 6개 업체로 늘어나게 됐음은 물론 국내에서는 전무했던 비메모리 파운더리사업의 길을 여는 계기로 받아들여졌다.
7)TFT LCD 대면적화
올해 평판디스플레이시장의 가장 획기적인 변화는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의 급속한 대면적화와 이로 인해 공급부족 국면으로 반전된 것이었다.
지난 95년 한해동안 TFT LCD 수요의 57%라는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던 10.4인치 제품은 불과 1년 사이에 25%로 크게 떨어졌으며 대신 11.3 및 12.1인치 제품이 전체 수요의 75%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는 경박단소화로 일관하던 노트북PC업체들이 TFT LCD의 저가화를 십분 활용, 제품 차별화를 위해 액정화면 크기확대 경쟁을 벌임에 따라 TFT LCD업체들도 채산성이 악화된 10.4인치 모듈을 조기 단종하고 일제히 12.1인치 모듈의 생산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해까지 10.4인치 제품의 공급과잉현상을 빚었던 TFT LCD시장은 올 들어 12.1인치 제품의 공급부족으로 급반전되는 현상이 야기됐다.
8)정부기관 전산화비용 10%, 소프트웨어 구입 할당 의무화
지난 3월 재경원은 내년부터 정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이 전산화 예산을 책정할 때 하드웨어 구입비용 가운데 10%를 의무적으로 소프트웨어 구입에 할당토록 하겠다고 결정했다.
본지가 특종 보도한 이 결정은 외국산 소프트웨어의 범람과 신규시장 발굴에 어려움을 겪던 관련업계에 큰 영향을 줘 신규투자와 개발인력 확보 등에 박차를 가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 소프트웨어산업을 중점 육성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앞장서 수요창출을 유도해야 한다는 여론을 정착시킴으로써 12월 마침내 관련부처로 하여금 구체적인 내수 및 해외시장 개척방안을 마련하게 하는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금까지 정부기관 등에서는 소프트웨어 구입에 별도의 예산을 책정하지 않은 데다 무상기증 요구가 관행화돼 있어 소프트웨어산업 발전에 적지않은 애로사항으로 지적돼 왔다.
9)LG전자 첫 리콜제 도입
LG전자(대표 구자홍)가 가전업계로는 처음으로 지난 8월 시판중인 냉장고 신제품(싱싱나라)에 대해 전면적인 리콜서비스를 실시했다.
문제가 된 것은 여름처럼 외부온도가 높을 경우 냉장고 외부와 내부의 온도차이로 인해 냉기를 분출하는 구멍이 미세한 얼음덩어리로 막힐 수 있었던 것.
LG전자는 문제가 된 냉장고를 소비자 요청에 의해 다른 제품으로 교환하거나 현금으로 환불해 주었다. LG전자는 이 조치로 6백억원 이상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지만 소비자들에게 제품의 불량을 스스로 고백함으로써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남겼다. LG전자는 회수한 냉장고를 전량 파기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국내 가전업체들은 품질에 한층 역점을 두는 계기가 됐다.
10)한국, 기억장치 강국 부상
한국이 기억장치분야의 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맥스터, 태일정밀, 삼성전기 등 국내업체들은 그동안 미국, 일본이 석권해 온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및 플로피디스크드라이브(FDD), CD롬드라이브 등 올해 기억장치 전분야에서 시장점유율을 크게 향상시켰다.
이들 기억장치업체는 올해 HDD 1천5백만대를 생산해 전세계 수요의 14%를 공급하고 CD롬드라이브는 1천1백50만대로 21%, FDD는 7백20만대로 13%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내업체들은 특히 향후 2∼3년간 대대적인 시설투자를 실시해 2000년까지 전세계 시장점유율을 20∼30%로 끌어올려 선두그룹에 진입한다는 중장기계획을 추진중이다.
전문가들은 기억장치 생산업체들이 계획대로 공급량을 늘릴 경우 2000년께에는 HDD 6천5백만대(세계시장 점유율 30%)를 공급할 것으로 기대되며 CD롬드라이브는 4천5백만대(52%), FDD는 3천4백만대(41%)를 공급해 명실공히 기억장치의 강국으로 자리를 굳힐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