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라 전체의 갖가지 시끄러움은 결국 어려운 경제를 회생시키자는 여러 가지 형태의 노력의 표출일 것이다. 무역적자가 이미 2백20억 달러를 넘어섰다. 특히 반도체, 정보통신 등 첨단 정보산업분야의 무역적자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모두들 「고효율화」가 해결방안이라 한다면, 첨단 정보기술에 의한 산업 및 경제구조로의 전환이 우리나라에 걸맞은 처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효율적인 산업, 기술정책과 전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첨단산업분야의 정책은 먼저 해당산업의 기술적 특성과 구조를 정확히 알고 그 바탕 위에서 수립돼야만 한다. 미래 정보산업의 꽃인 비메모리 반도체(주문형반도체, 마이크로프로세서, 믹스트시그널IC 등)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그동안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은 셀 수 없이 거론돼 왔지만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 현 실정이다. 정작 이 산업의 기술적 구조와 우리 현실의 특성을 바탕으로 분석, 수립한 육성정책의 부재가 그 원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D램을 중심으로 한 메모리 반도체에 지나치게 편중돼 성장해 왔다. 설계기술이 중심이 되는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뿌리를 내리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팀의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할과 기능에 따라 보통 5가지 유형의 설계 기술자들로 구분되며, 이들은 전체적으로 피라미드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구체적인 예로, 비메모리 반도체로 시작해서 현재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업체가 된 미국 인텔社의 연구그룹 가운데 2, 3개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한 그룹을 살펴보자. 피라미드 구조의 상층부에는 칩의 기능성(Intellectual ProPerties)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구조설계(Architecture Design)를 담당하는 자가 5, 6명이 있고 그 밑에는 논리설계(Logic Design)를 담당하는 기술자가 10~20명이 있으며, 그 하층부에는 반도체 비즈니스의 성패를 좌우하는 「칩의 크기를 작게 하고 수율을 높이는 역할」을 담당하는 회로설계(Circuit Design), 배치설계(Layout Design) 및 검증(Verification)기술자가 도합 1백명이 넘는다고 한다.
상층부에 해당하는 구조설계와 논리설계 기술자들은 장기간의 수준 높은 교육과 실무경험을 통해서 양성되지만 많은 수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탁월한 기술자 몇 명으로도 큰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유형으로 전환 가능한 고급 엔지니어들을 충분히 갖고 있다. 반면 하위단계에 위치하면서 반도체 산업의 성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칩의 크기와 수율을 담당하는 회로와 배치설계 및 검증 기술자들은 상위단계 설계기술자들의 10배 이상의 숫자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 유형의 엔지니어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인력 인프라」의 구축이다. 메모리 반도체로 시작한 일본도 이러한 이유에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위단계의 설계기술자들은 반드시 대학의 전문학과가 아니더라도 일반 반도체 설계기술학원 등에서 1년 이내의 비교적 단기간의 교육, 훈련만으로도 양성이 가능하다.
우리도 대학이나 전문대 등에서 교육훈련 과정을 면밀히 만들고, 단기 반도체설계훈련기관 등을 세워 고학력 여성 등을 포함한 유휴인력을 훈련시키면 필요한 인력 인프라 구축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이들이 사회에 꼭 필요한 엔지니어로서 인정과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참단 정보시대의 산업정책의 고효율적 육성방안은 해당산업의 기술적 구조와 특성을 명확하게 상세히 이해한 가운데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해당기술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전문가들에 의해 정책이 수립되고 추진돼야만 효율적인 산업발전이 가능할 것이며, 나아가 무한경쟁의 글로벌시대에 경쟁력 있는 정보사회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부품종합기술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