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주전산기산업 회생 기미 보인다

국산 주전산기의 주수요처이던 정부기관들이 그동안 국산 주전산기 구입에 소극적이던 입장에서 벗어나 이의 사용을 적극 검토하기 시작해 업계를 들뜨게 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우선 내무부가 국산 주전산기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전자주민증사업과 국산 주전산기사업을 연계하기로 정보통신부와 합의한 것에서 비롯됐다.

당초 내무부는 전자주민증용 주전산시스템을 현재 전국 15개 시도에서 운용하고 있는 주민망용 시스템과 별도로 중앙에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국민관련 7개 제증명을 통합, DB화하고 전자주민증 발급업무를 담당할 발급센터를 두기로 했으나 국산 주전산기업계의 강력한 반발과 정통부의 의견을 고려, 주민망용 전산시스템은 국산 주전산기를 계속 사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 현대전자, LG전자, 대우통신 등 국산 주전산기 4사는 한국컴퓨터연구조합을 통해 내무부, 정통부, 과학기술처, 조달청 등 유관기관에 국산 주전산기산업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전자주민증용 전산시스템 구축 방법을 재고해야 하고 이에 따라 내무부의 슈퍼컴퓨터 도입과 관련한 국제입찰을 전면 연기해야 한다는 내용의 건의문을 제출했었다.

업계의 건의를 접한 정통부는 긴급하게 내무부와 의견 조정에 들어갔고 내무부는 정통부와 업계의 입장을 고려해 전자주민증과 국산 주전산기사업을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내무부 및 정통부 실무자선에서 합의된 내용의 골격은 전자주민증사업은 당초 내무부안대로 중앙집중식으로 가져가되 주민증용 시스템은 전국 2백30여개 시군구에서 계속 운영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현재 전국 2백30여개 시군구 중 일부 시군구에서 사용하고 있는 구형 국산 주전산기는 신형으로 바꾸고 나머지 시군구는 신형 국산 주전산기를 새로 구입하며 이에 소요되는 자금은 정부의 정책자금을 활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국산 주전산기업계는 『내무부의 입장 변화를 환영한다』고 밝히면서도 『중앙에 발급센터용 슈퍼컴퓨터와 7개 제증명과 관련된 색인DB용 슈퍼컴퓨터만 두고 주민증 관리 등 핵심업무는 시군구로 전면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무부의 이같은 변화와 함께 당초 외산기종의 도입을 추진해왔던 서울시도 최근들어 자동차등록업무용으로 운용하고 있는 전산시스템을 국산 주전산기로 교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초 건교부로부터 자동차등록업무를 위임받아 전산시스템을 운용해온 서울시는 폭주하는 민원을 반영해 현재 사용하고 있는 톨러런트기종을 외산기종으로 교체하기로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의 이같은 움직임을 감지한 주전산기업계는 다각적인 통로를 통해 이의 불합리성을 지적했고 서울시는 건교부를 통해 자동차등록용 전산시스템의 재구축 방안을 협의했다.

이 과정에서 건교부는 한국전산원에 시스템 재구축과 관련한 의견을 조회했는데 한국전산원은 국산 주전산기Ⅲ로 시스템을 교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건교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서울시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높은 실정이다.

서울시가 아직 국산 주전산기Ⅲ로 전산시스템을 교체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은 아니지만 건교부와 한국전산원의 용역결과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국산 주전산기업계의 관측이다.

국산 주전산기사업의 생존기반이나 다름없는 내무부와 서울시의 방침을 일단 되돌려놓은 국산 주전산기업계는 안도하면서도 내심 불안한 표정을 보이고 있다.

한편 정부 관계자는 『국산 주전산기 4사 간에 이해관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과 사용자가 기피하는 기종을 애국심에 호소해 구매해줄 것을 강조하는 업계의 구태의연한 자세는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