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Ⅰ] ITA.OECD 가입 전자산업 핫 이슈 부상...새 무역질서 태풍의 눈

세계무역기구(WTO) 제1차 각료회의는 지난해 12월 13일 싱가포르에서 WTO 출범 2년만에 매우 파격적인 합의문을 발표했다.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세계무역에 있어 가장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정보기술협정(ITA)에 주요 31개 회원국들이 모두 동참키로 하는 등 22개 항의 선언문을 채택한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에앞서 12일 청와대에서 「선진국 클럽」이라고 불리우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29번째 회원국 가입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리셉션에서 『앞으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의 회원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이라며 『그동안 추진해 온 세계화 시책과 개방을 위한 제도개혁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자유무역과 시장개방 그리고 새로운 무역질서 창조라는 세계경제의 커다란 물줄기에 우리경제, 아니 우리나라 전자산업이 수행해나가야 할 역할과 책임에 대한 과제를 다시금 생각케 한 큰 사건들이 97년 새해를 앞두고 잇달아 터져 나왔던 것이다.

지난 95년 새로운 무역질서 창조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WTO의 2년 결산은 한마디로 지난해 합의한 ITA 협정을 꼽을 수 있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 캐나다 등 이른바 「쿼드」 4개국이 근로기준과 관련한 노동조건과 무역환경, 경쟁정책, 지적재산권 문제 등 산적한 핵심적 사안들을 제쳐두고 ITA협정 문제를 끝까지 고집, 매듭진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는 한마디로 이들 선진 4개국의 경제적 이익 때문이다. 컴퓨터, 교환기, 전송장비 등에 있어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고 있는 「쿼드」 4개국은 정보기술제품의 무관세화로 새로운 세계 시장질서를 창조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기술협정(ITA)이란 컴퓨터 반도체 컴퓨터SW 통신장비 컴퓨터 기반측정 및 분석장비 반도체 생산장비 등 6개부문 2백2개 정보통신제품에 대해 4단계에 걸쳐 오는 2000년까지 완전 무세화 하자는 것으로, WTO 출범에 앞서 각국이 양허한 개방 일정과는 별개로 따로 개방추를 달아, 홍콩, 대만 등 아시아 주요국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내 전자산업계는 이 협정의 발효로 적어도 연간 6천억달러라는 교역시장이 형성되고 국내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ITA 가입에 따른 산업여파는 반도체 생산장비, 통신기기, 컴퓨터 순이었으며 반도체와 집적회로의 경우에는 수출 7백90억달러, 수입 5백억달러 등으로 연간 약 2백30억달러의 흑자가 예상됐다.

그러나 반도체 생산장비의 경우 수출은 1천8백만달러에 그치는 반면 수입은 무려 1백억 달러, 통신장비 중 전송장비는 수입 49억달러, 수출 1억5천만달러로 총 47억달러의 무역수지 적자가 예상됐다. 또 컴퓨터 부문은 컴퓨터 단위장치와 노트북 PC등이 각각 56억, 33억달러의 무역수지 적자가 예상되고 있으며 SW가 저장되는 레이저디스크 등 미디어도 큰폭의 무역수지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마디로 정보통신산업에 대한 기초, 기반 기술을 확보하지 않고는 세계시장 경쟁에서 베겨나갈 수 없는 상황으로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OECD 가입은 「선진국 클럽」에 가입했다는 세계적 시선 뿐 아니라 새로운 세계경제질서 협의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선진국의 앞선기술을 획득하며, 양자간 통상압력을 다자채널로 유도할 수 있다는 등의 경제적 실익도 적지 않다.

그러나 자본시장 개방과 거시경제적 영향으로 인플레이션과 환율절상으로 인한 수출부진과 경기침체가 우려되고 있으며 환경과 노동법 개정 등의 의무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정적 요소도 적지 않다.

특히 전자업계는 금융, 통상 등 관련분야의 전문인력이 태부족하다는 문제점도 안고 있지만 오는 99년으로 예고돼 있는 수입선다변화제도의 당장 철폐라는 또다른 파고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더욱이 전자3사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전속대리점 체제의 붕괴는 불을 보듯 뻔하며 환경과 관련한 비용은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다.

업계는 환경과 관련, 폐가전제품에 대한 예치금제, 공해배출량에 따른 부과금제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있으며 이로인한 추가 원가부담액은 약 7∼8%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행의 전속대리점 체제는 배타적 거래라는 점에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양판점의 위상제고와 함께 전속대리점의 양판점으로의 일대 전환 등 유통에 일대혁신을 몰고 올 것이다. 저가판매 경쟁이 더욱 심화되면서 대형 유통점에 의한 시장재편이 가속화될 것이다.

아직까지 특별한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으나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입선다변화제의 철폐 요구도 잠재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는 컬러TV, VCR, 캠코더 등의 시장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첩첩산중이라는게 업계의 솔직한 심정이다.

반면 산업피해 구제제도의 보완으로 수입품에 대한 통상규제가 용이해 지고 선진국의 불공정 행위가 개선될 수 있는, 전자업계로서는 활용할 수 있는 경쟁 툴의 생성도 간과할 수 없다.

또 무역관리체제의 개편으로 수출입절차가 간소화되고 논란의 여지는 없지않으나 전자부품, 산업용전자, 가정용 전자 등은 금리하락에 따른 생산 및 투자확대가 기대돼 경쟁력을 한단계 제고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자산업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따라서 이같은 새로운 무역질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현지 투자전략과 각종 규제철폐, 경영합리화 등의 환골탈태의 자세가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전자산업진흥회 박재린 상무이사는 『우리나라의 정보기술의 가입은 산업계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도 OECD 가입에 대해서는 『위기일 수도 있지만 기회일 수도 있다』는 다소 애매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같은 세계경제 질서의 변화를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기업에 대한 규제철폐를 서두르는등 정부가 앞장서 기업활동을 뒷받침 해줘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컨대 해외직접투자 자기자금조달 의무조항 철폐와 해외투자절차 간소화, 수출선수금, 착수금 영수한도 폐지, 통신산업 진입규제 완화, 수도권공장총량 규제 및 권역별 차등규제, 수도권 첨단산업 입지규제, 수도권내 지방세 중과제도의 완화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보기술협정 가입과 관련해서는 관련기기의 기술개발 노력 뿐 아니라 국가 전략적 대책이 시급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지난해 12월 WTO각료회의는 각국의 산업발전 단계를 고려,제한된 범위내에서 무관세화 시기를 2000년 이후로 연장할 수 있도록 신축성을 부여하고 협정 발효시기를 오는 7월로 함으로써 그나마 숨통을 조금 열어놓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최종 드래프트안이 나오진 않았으나 업계는 노트북 PC를비롯한 컴퓨터 및 교환기, 전송장비, 무선장비 등 상대적으로 산업이 열악하거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제품에 대해서는 이행기간의 연장을 강력 추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가입과 정보기술협정(ITA)의 가입은 앞서 언급한 데로 산업계에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승부와 선진국과의 대등과 경쟁시대에 돌입한 것을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짜피 벗겨져야 할「철갑옷」이라면 빨리 벗어 던져야 할 것이다.

투자를 새롭게 하고 현지투자를 위한 전략을 다시금 다듬어야 한다. 제품 뿐 아니라 금융업무에 대한관심이 필요하며 국제시대에 걸맞는 통상전문가들도 시급히 양성해야 한다. 유통망 확충을 위한 다양한 유통경로의 개발도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에 걸맞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철폐 및 완화조치는 빠르면 빠를 수록 좋을 것이다.

이는 김대통령이 OECD 가입을 환영하는 다과회에서 「개항의 시기를 놓쳐 끝내는 불행한 화를 자초한 조선말기의 국운」」을 언급했듯이 개방적 시장 경제에 의한 산업구조를 기업규제 때문에 재편의 시기를 놓쳐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지난 58년 라디오 수출을 시작으로 태동한 우리나라 전자산업이 97년 새해를 맞아 실로 40년만에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모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