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Ⅰ] 전자산업 핫 이슈...반도체 가격 폭락

D램가격 급락으로 시작된 반도체경기 위축은 지난해 10대 뉴스에 들어갈 만큼 큰 사건이었다. 그간 국내산업의 간판스타 역할을 해왔던 반도체경기의 급랭이 몰고 온 결과는 예상 외로 컸다. 수출은 물론 전반적인 국내 산업경기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이같은 반도체의 위력을 유감없이 경험한 96년의 후유증 때문인지 반도체경기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부쩍 늘고 있다. 업계는 물론 일반인조차 반도체경기 회복을 우리경제 활성화의 중요한 사안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전문시장조사기관 및 업계 관계자들은 올 반도체 경기와 관련해 『96년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하고 있다. 이 근거로 반도체 수요(물량기준)가 주시장인 PC환경 등을 고려할 때 60% 이상 늘 것으로 보이는 데다 지난해 반도체경기 급랭의 주요인이었던 가격도 떨어질 만큼 떨어져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불안한 기색은 남아 있다. 96년에도 설마설마 하다가 당한 꼴이었기 때문이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까지 상황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는 것이 지난해를 마감하며 반도체업계의 대다수 관계자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회복조짐은 분명히 보이지만 장담은 못하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특히 핵심사안이라 할 수 있는 본격적인 경기회복 시점을 놓고는 전문분석기관조차도 조금씩 의견이 엇갈리는 실정이다.

그러나 경기의 핵심변수인 수요와 공급 측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완전회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올해보다는 나아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 것만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D램경기를 좌우하는 PC시장 환경이 낙관적이다.

우선 PC 판매대수가 96년 21% 증가한 데 이어 올해도 18%의 비교적 높은 신장세를 보여 8천5백만대를 무난히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PC 보급률은 특히 2000년까지는 경제성장률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급률이 낮은 일본과 아시아지역의 높은 수요증가세에 힘입어 연평균 17%의 비교적 건실한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대당 소요되는 메인메모리 용량의 증가추세는 D램시장 확대의 직접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업계가 예상하는 올 PC 메모리증가율은 35% 정도. 고성능 CPU인 펜티엄프로의 본격적인 채용추세와 함께 지난해 출시된 컴퓨터 운용체계인 윈도NT4.0이 서버기종뿐만 아니라 PC에도 확대될 것으로 보여 메인메모리는 96년 평균 23M 수준에서 올해 31M 수준으로 크게 늘 것으로 관측된다. 게다가 D램가격 하락이 유저들에게 메인메모리 증설을 한층 부추길 것이라는 분석도 지배적이다.

각종 첨단 전자기기의 등장과 멀티미디어화도 메모리 신규수요 창출의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DVD, 64비트 게임기, PDA 등의 보급이 확대되고 각종 디지털 세트톱박스, HDTV 등의 본격적인 출현은 D램 수요를 확대시키는 견인차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전문조사기관마다 다소 차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97년 16MD램 시장은 약 16억개를 넘어서고 64MD램은 9억개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등 수요 면에서는 분명히 불황보다는 회복의 기미가 훨씬 많은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공급 측면이다. 96년 반도체경기 급랭의 주원인이 수요위축보다는 공급과잉에 따른 것이었다는 것을 상기할 때 97년 반도체 공급상황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그간 반도체호황에 따른 유력업체들의 잇따른 증설과 대만의 D램시장 신규참여 등은 97년에도 얼마든지 96년 상황의 재현을 부를 수 있는 요인이다. 특히 97년부터 새로 가동될 예정인 대만의 생산라인만도 TI에이서, 윈본드 등을 포함해 10개가 넘어 생산수량이 8인치 웨이퍼 기준으로 월 21만장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은 확실히 우려할 만 하다.

D램 공급증가는 한, 일 업체간 주도권다툼에 따른 경쟁적인 생산능력의 확대가 일차적인 원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한 넷다이(웨이퍼당 다이 생산) 수 늘리기와 수율향상에 따른 공급증가도 무시할 수 없다.

관계기관들의 전망에 따르면 미세가공기술의 발달로 회로선폭이 0.5미크론에서 0.4미크론(3세대)으로 축소되고 더 나아가 64MD램 생산에 쓰이는 0.35미크론(4세대)기술을 채용할 경우 웨이퍼 투입량은 그대로 둔다 해도 칩 생산량은 최고 50% 이상 더 나올 수 있다.

이에 따라 96년 상반기에는 8인치 웨이퍼 한 장에서 3백50개 정도를 생산할 수 있었으나 97년 상반기에는 대다수의 업체가 4백∼4백50개까지 만들 수 있게 되며 4세대기술을 채용하는 삼성 등 일부 선발업체들은 넷다이 수를 5백50개까지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96년 초 평균 60% 내외에 머물렀던 수율(총생산 수량에서 정품이 차지하는 비율)도 97년에는 8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돼 D램 공급량 증가를 부추길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가 추정한 97년 D램 공급증가분은 16MD램이 전년대비 6억개 정도이고 64MD램이 8천5백만개 정도다. 공급증가 원인의 60∼80%가 바로 생산능력 확대에 의해서고 넷다이 수 증가와 수율향상으로 인한 원인이 20∼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통상 소자업체들의 설비투자액이 매출의 20%를 초과할 경우 1∼2년 후 반드시 반도체시장은 공급과잉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었다.

85년과 90년의 세계 반도체시장 불황도 그 이전의 과다한 설비투자에서 비롯됐고 지난해 가격급락도 바로 94년과 95년에 연이은 한국과 일본업체들의 생산능력 확충이 가져온 결과라는 점에 이견이 없다. 이처럼 반도체 설비투자가 4∼5년 주기로 집중되는 것은 4년마다 새로운 제품의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이에 따른 웨이퍼 크기의 확대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지난 94년 하반기 이후 투자가 급증한 것도 새로 개발된 8인치 웨이퍼의 가공을 위한 신규 설비투자가 크게 늘었기 때문인데 99년 이후에도 현재 표준화작업이 활발히 논의중인 12인치 웨이퍼 가공설비에 대한 투자가 집행되면서 설비투자는 다시 한 번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수급요인을 종합할 때 97년 3, 4분기까지는 여전히 3∼5% 정도의 공급과잉현상이 지속되고 4, 4분기에 접어들면서 수급불균형 해소조짐이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그리고 경기사이클상 97년과 98년에는 설비투자도 감소 내지 정체될 것으로 보여 98년 이후에는 수급상황은 훨씬 호전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16MD램의 경우 97년에 수요는 약 16억개인 데 반해 공급은 17억개가 넘어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약간의 공급과잉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98년 들어서는 수요와 공급 모두 20억개 수준에서 균형을 이룰 것으로 분석된다.

64MD램은 공급이 97년에 9천만개와 98년 3억개에 이를 전망인데 반해 수요는 각각 8천5백만개와 2억9천만개 정도로 거의 비슷한 수준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가격은 D램경기 회복의 최대 변수 가운데 하나다. 96년의 경우만 보더라도 D램시장 위축은 수요감소가 아닌 단가하락이 주원인이었음을 상기할 때 가격문제는 97년 경기회복을 가늠하는 핵심사안임에 틀림없다.

이 때문인지 가격문제와 관련해서는 전문조사기관끼리도 적지않은 편차를 나타내고 있다. 데이터퀘스트는 97년 16MD램 가격이 7∼10달러선을 오락가락할 것으로 보고 있는 반면 노무라연구소는 8달러선에서 유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다른 시장전문조사기관이나 마케팅 관계자 중 일부는 최악의 경우 6달러선이 무너질 수 있다고 보기도 하지만 아무리 좋아도 10달러선을 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는 모두 동의하고 있다.

64MD램의 경우는 그 차이가 훨씬 확연하다. 데이터퀘스트가 65달러선에서 유지될 것으로 보는 데 반해 노무라는 97년 1, 4분기에는 60달러선이지만 4, 4분기께에는 45달러 이하대를 형성할 것으로 보고 있고 일부에서는 35달러선에 팔릴 것으로 전망하는 등 각각의 편차가 거의 2배에 가까운 실정이다.

이같은 D램 수급상황과 가격문제를 종합해 볼 때 97년 이후 반도체시장은 크게 2가지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먼저 가격안정세에 힘입어 97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회복기에 접어들 경우다. 이는 노무라의 예상대로 16MD램의 가격이 8달러선에서 안정되고 PC 메인메모리 용량이 늘어날 경우 가능하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 일 반도체업체들은 사실상 적자상태다. 전문경영인체제인 일본업체의 경우 97년 들어서까지 손해를 보고 팔기는 힘들 것으로 보여 어느 정도의 가격지지대가 형성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다 PC재고가 줄고 반도체업체들의 설비투자 축소가 겹칠 경우 서서히 가격이 안정되고 16MD램과 64MD램의 세대교체 움직임도 나타나면서 97년 말에는 완전한 회복세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반도체업체들이 지속적으로 생산능력을 확충하고 다이축소(슈링크)와 수율향상에 박차를 가할 경우 8달러선은 지켜지기 어려울 것으로 업계는 점치고 있다. 여기에다 대만업체들이 본격적으로 무한경쟁에 뛰어들 경우 16MD램의 가격은 변동비 수준인 6달러선까지 무너져 마침내 한계기업이 속출해 지난 85년에 인텔이 D램사업에서 손을 뗀 것처럼 시장에서 철수하는 기업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의 대응방안으로 업체들은 저마다 64MD램 생산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여 64MD램 시장 조기형성이 예상되나 수율문제로 1MD램시대에 도시바가 누렸던 독점기업 출현이 재현될 가능성도 적지않아 보인다. 이럴 경우 여전히 나머지 대다수 업체들은 수익악화에 시달릴 것이 확실시 된다.

97년 시장상황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아직까지는 많은 이들이 비교적 낙관적인 상황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편이다. 97년 반도체경기는 가끔 소나기가 오락가락 하겠지만 「흐린 후 갬」이라는 일기예보가 적중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경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