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주부인 「X」씨는 매일 즐겨보는 연속극을 보려던 차에 남편으로부터 외식을 하자는 전화를 받았다. 아파트 근처 차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나오라는 주문이었다. X씨는 연속극의 지난회에서 본 극적인 장면이 생각나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주저하지 않고 TV를 껐다. 방송날짜가 지났어도 언제든지 자기가 보고자 하는 프로그램을 불러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소업체를 경영하는 「Y」사장은 출근하기전 집에서 신문을 보는 습관을 수년째 지속해왔다. 그러나 얼마전부터 신문을 보기 위해 TV를 켜고 무선 키보드를 집어든다. 그러고나서 화면에 자신의 관심사인 「경제」라는 단어를 입력해서 주요 뉴스를 보고 자신의 사업과 관련된 내용들은 TV에 연결된 컬러프린터로 곧바로 출력해낸 뒤 정독한다.
야구광인 「Z」씨는 직장에서 근무를 마치자 마자 집으로 직행했다. 왜냐하면 한국시리즈 결승전 중계방송이 있기 때문이었다. Z씨는 자기가 좋아하는선수를 중심으로 카메라 앵글을 선택하거나 중요한 선수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자세한 기록을 열람하면서 경기를 만끽한다. 또한 마음만 먹으면 경기가 끝난 후 실시되는 인기투표에도 참여할 수 있다.
이러한 상상들은 결코 먼 앞날의 얘기가 아니다. 최근들어 국내외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소위 「정보가전」 제품들은 이러한 체험을 조만간 가정에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걸게 하고 있다.
현재 정보가전의 실체를 명확이 규명하기는 어렵지만 기존의 TV를 중심으로 통신과 컴퓨터기능이 접목된 멀티미디어기기로 윤곽이 그려지고 있다. 정보가전화의 추세는 기술, 산업, 문화 전반에 걸쳐 새로운 시대로의 진입을 예고하고 있는데 이미 기술과 산업적으로는 격동의 징후가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다.
정보가전화에 추진력을 제공하는 기술적인 견인차는 디지털기술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뉴미디어 연구소장인 니콜라스 니그로폰테 박사가 그의 저서 「디지털이다(Being Digital)」에서 언급했듯이 디지털기술의 물결은 정보가전이란 배를 싣고 가전산업으로 넘쳐흐르고 있다. 최근에 한국과 일본에서 등장한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와 DVD플레이어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듯이 디지털 기술은 레이저디스크(LD) 수준의 고화질과 극장에서나 들을 수 있는 선명하고 입체감있는 음향을 안방에서도 즐길수있게 했다.
또한 DVD의 데이터 저장용량은 컴팩트디스크(CD)보다 무려 7배나 많은 4.7기가바이트(GB)의 대부분의 영화를 1장의 디스크에 수록할 수 있을 정도인데 이처럼 방대한 데이터 저장이 가능한 이유는 「MPEG 2」라는 디지털 영상압축기술 덕택이다.
또한 이미 출시된 디지털 위성방송수신기, 디지털VCR(캠코더)와 오는 2000년부터 상품화 될 것으로 전망되는 고선명(HD)TV 역시 모두 디지털기술의 결정체라고 할수있다.
이러한 디지털기술은 「통합화(Integration)」 「지능화(Intelligent)」 「양방향화」, 즉 「3I」로 집약되는 정보가전제품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의 가정에서는 TV에 VCR, 게임기, 비디오CDP 등 다양한 AV기기를 연결해서 사용하고 있으나 앞으로 등장할 정보가전 멀티미디어는 이 모든 기능을 하나로 통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즉 각종 광디스크의 재생이 가능한 DVD플레이어는 물론 프린터, 전화기 등이 TV에 연결되어 TV는 단순한 영상수신기가 아닌 가정의 정보단말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정보가전제품이 이처럼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선 지능화가 필수적이다. TV안에는 마치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 역할을 할 수 있는 제어장치와 운용체계(OS)가 채용될 것이며 주변 AV기기와 쉽게 접속하고 제어할 수있는 인터페이스장치나 소프트웨어도 부가될 것이다. 즉 정보가전제품을 위한 새로운 아키텍처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정보가전제품의 지능화 징후는 최근 등장한 인터넷TV에 채용된 전용칩과 「파이어 와이어(Fire Wire)」라는 고속 디지털 인터페이스 등의 출현을 통해 가시화되고 있다.
「양방향성」은 정보가전제품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임과 동시에 향후 소비자들에게 정보가전의 혜택을 실감할 수 있게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정보가전제품의 양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추세는 바로 지난해부터 출시되기 시작한 인터넷TV다. 가전업계는 세계적으로 이는 인터넷 붐을 틈타 인터TV를 가지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는 의도가 크지만 이는 결국 양방향기능을 갖춘 정보가전제품의 형태로 발전할 것이다. 인터넷TV를 통해 사용자들은 그동안 수신장치로만 인식해왔던 TV를 통해 정보를 구하거나 발신할 수있게 되었다. 지난해 미국 「웹TV」가 인터넷TV에 채용한 온라인 홈쇼핑기능과 일본의 「텔레비전 도쿄」가 처음으로 시도한 인터텍스트방송은 정보가전제품의 양방향성을 명료하게 인식시켜주고 있다. 인터텍스트방송은 기존의 문자다중방송과 유사하지만 시청자가 인기투표나 퀴즈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주목되고 있다.
향후 TV에 채용된 양방향기능은 화상전화, 홈뱅킹, 원격강의가 현실화됨으로서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가전화를 TV와 PC가 융화되는 추세로 간단하게 설명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러한 흐름이 산업적으로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TV중심의 정보가전제품이냐 아니면 PC 중심의 정보가전제품이냐 하는 문제는 양쪽 산업계 입장에서는 향후 첨단산업의 주도권을 잡는 것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드웨어업계와 소프트웨어업계간 이해타산과도 연계되어있으며 나아가 관련기업이나 국가의 위상을 바꿀 수있는 계기도 될 수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의 오라클, 선 등이 주창하고 있는 네트워크 PC와 가전업계들이 서둘러 내놓고 있는 인터넷TV는 컴퓨터산업계와 가전산업계가 정보가전산업을 놓고 벌이는 주도권 경쟁의 단면이며 디지털TV의 규격제정을 둘러싸고 방송(소프트웨어), 가전, 컴퓨터업계가 벌이는 첨예한 신경전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이들 관계당사자들은 정보가전사업이 미래로 가는 대세라는 것을 모두 인정하고 있지만 상호이해를 절충시킬 수 있는 대안이 나오기까지는 여러차례의 힘겨루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한 그러한 주도권 경쟁속에서 업체간 전략적 제휴, 합병 및 지지세력 규합을 위한 이합집산도 그 어느때보다 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쨌든 정보가전제품이 기술적인 융합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정보가전산업의 형성은 가전, 컴퓨터, 소프트웨어, 정보통신 등 여러 관련분야에 걸쳐 기존 질서가 와해되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는 과정을 함축하고 있다.
또한 정보가전시대는 소비자들의 생활문화패턴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현재보다 훨씬 자유로워 질 수 있으나 개인주의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하루가 달리 기술이 향상되고 첨단정보가전제품이 등장하면서 무지개빛 청사진을 제공하고 있지만 정작 디지털문명이 인간과 가정을 더욱 행복하게만들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은 아직까지 막연한 상태다.
【유형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