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목을 앞둔 새해 극장가의 상차림이 한결 풍성하다.훈훈한 감동을 나눌 가족물부터 연인들을위한 사랑이야기, 손수건을 흠뻑 적셔줄 최루성 드라마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특히 지난 여름방학시즌이후 외화의 홍수속에서 안방을 고슨란히 내주었던 우리 영화도 연말을 기점으로 속속 기대작들이 선보이면서 극장가 탈환을 노리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나선 새해 극장나들이에 어울릴 만한 외화는 <101달마시안> <스페이스잼> <마이크로 코스모스> 등을 꼽을수 있다. 이중 <101달마시안>은 현대판 마녀에게 끌려가 털코트가될 운명에 처했다가 가까스로 도망쳐 나오는백 한 마리 강아지의 아슬아슬한 모험담이다.<나홀로집에> 이후 미국 영화산업을이끄는 「마이더스 제작자」로 떠오른 존 휴즈가 이미 만화비디오로 출시된 월트디즈니의 고전애니메이션을 실제 동물들이 등장하는 라이브액션 극영화로 만들었다.
생후 8주일만에 엄격한 오디션을 거쳐캐스팅된 후 할리우드 최고의 조련사 밑에서 연기수업을 쌓고 스크린에 데뷔한 점박이 강아지들의 움직임이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다. 코르셋으로꽉 조인 허리에 번쩍이는 사슬장식 팔지,뾰족한 인조손톱이 달린 가죽장갑을 낀 마녀 크루엘라 드빌(글렌 크로즈)의 그로테스크하면서 화려한 의상도 볼거리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합성영화 <스페이스 잼>도 어린이와 함께 보면서 꿈과 상상력을 길러줄 만한 오락영화다.어느 행성에 사는 외계인들이 따분한 놀이공원을 손님으로 북적거리게 만들기 위해 지구에서 익살스럽기로 소문난 만화책속의 엔터테이너 벅스 바니를 납치하려 한다는황당무계한 이야기. 미국에서 미키 마우스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워너브라더즈사의 만화캐릭터 벅스 바니가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과 한팀이 되어 우주깡패들과 벌이는 한판 승부가 박진감 넘친다.
마이클 조던 이외에도 찰리 버클리, 먹시 보거스,패트릭 유잉,레리 존슨을 비롯 실제NBA 선수들이 던지는 덩크슛 묘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스필버그의 <누가로저 래빗을 모함했나>가 LP라면 이 영화는 디지털 CD』라는 평가를 받아낸 현란한 컴퓨터그래픽애니메이션은 <쥬라기공원>의 특수효과팀인 ILM의 작품.
아이들에게 자연에 대한 사랑과 경외심을 일깨워줄 수 만한 75분짜리 다큐멘터리 필름인 <마이크로 코스모스>는 특수카메라와 조명으로 곤충들의 삶과 사랑,죽음의 순간을 포착해 깐느영화제에서 「영화 1백년 동안 처음으로 잡아낸 아름다운 미지의 세계」라는 찬사를 받아낸작품이다.거대한 고무풍선 같은 이슬방울,이끼 침대위에서 사랑을 나누는 두 마리의달팽이,하늘의 거인 꿩에게 무자비하게 살육당하는 개미군단,소금쟁이들이 펼치는 수면위의 피켜 스케이팅등 감탄사가 절로 터질 만큼 아름다운 대자연의 서사시가 펼쳐진다.
이에대해 <데이라잇>은 극장문을 나설 때 남는 건 없지만 머리를 비우고 스크린을 쳐다보는 시간만은 본전생각할 틈을 안주는 영화다.뉴저지와 맨하탄을 잇는 해저터널에서 유독물을 실은 터널이 폭파되면서 50만 시민의 목숨을구하기 위해 붕괴현장에 뛰어드는 응급구조대장(실베스타 스탤론 분)의 활약상을 그린 1백 % 헐리우드식 액션영화다. 희생정신과 정의감으로 뭉친영웅이 나타나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서 인명을 구해낸다는 판에 박힌 줄거리지만 스트레스 해소용으로는 만점이다.특히 바닷물이 차오르고 연쇄폭발이 일어나는 장면을 생동감있게 연출하기위해 제작사가 만든 거대한 인조터널이 눈요기거리.
연인들을 위한 영원한 고전극 <로미오와 줄리엣>도 올 겨울 흥행작 리스트에서 빼놓을 수없는 작품이다.그러나 아름다운 베로나 해변과 달빛아래은은히 울려퍼지는 세레나데를 기대하고극장문을 들어선 관객이라면 적지 않게 당황할 만한 신세대식 러브스토리다. 과거인지 미래인지도 가늠할 수없는 가상의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패션권총을 찬 로미오가 원수 집안의딸 줄리엣과 함께 스포츠카를 타고 달린다. 경찰 헬기를 피해 들어간 열대의 나무숲에서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두 연인은 <토탈 이클립스>의 광기넘치는 연기로 차세대 스타자리를 예약해 놓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작은 아씨들>의 베스역으로 기억되는 16세의 신성 클레어데인즈.
그밖에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 <브레이킹 더 웨이브> 등 이색적인 영상체험으로 마니아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아트필름들도 새해극장가에 걸려 있다.
지난해 10월 「그들만의 세상」이 개봉된 뒤로는 스크린쿼터를 채우기 위해 「울며겨자먹기」로 내건 리바이벌영화만이 근근히 명맹을 이어오던 우리 영화도 할리우드 흥행대작들의 눌량공세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다.또 새해 벽두부터 잇달아 선보일 작품들도 저마다 만만치 않은흥행요소를 지니고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쉴 새 없이 터지는 서구식 액션에 식상한 관객이라면 액션스타 박상민과 코민연기의 대가 박중훈이 남자들만의 우정과 거친 뒷골목의 세계를 보여주는 우리영화 <깡패수업>이 있다.이작품은 평범한 삶으로의 도피를 꿈꾸는 프로깡패와 바탠더로 돈을 벌려다가실수로 아쿠자의 세계에발을 디딘 초보깡패가 한조를 이루는 등장하는 이른바 「버디무디」.<돈을 갖고 튀어라>로 데뷔한 김상진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닥터봉>으로 95년 우리영화 최고 흥행을 기록했던 황기성 사단의 <고스트맘마>는 실컷울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은 여성관객들을 위한 최루성 영화다. 교통사고로 유령이 된 아내가 승천하지 못하고 인간세상에남아 남편과 아이를 보살펴 준다는 내용.결말이 보이는 진부한 줄거리이긴 하지만 신예 한지승 감독의 깔끔한 연출이 <사랑과 영혼>의 아류작 같은느낌을 털어준다.
남자 사우나에 들어가 환호성을 지를 정도로 장난끼가 넘치는가 하면 아이에게새엄마를 만들어 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마음씨 고운 유령 최진실이 사랑하는 가족의 곁을 떠나는 마지막장면이 가슴 찡한 멜로드라마다.
<이선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