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로미오와 줄리엣

흔히 훌륭한 작품은 시공을 초월하는 가치(항구성과 보편성)를 갖는다고 알려져 있다.그러나 고전을 다시 읽을 때,고전 문학작품이 영화로 재해석된 것을 볼 때,때때로 그러한 가르침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영화로 만든 것들이그렇다.

고전을 재해석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원작의 향기를 그대로 살리는 방식, 원작의 틀을 유지하되 배경에 해당하는 시간과 공간을 현대로 바꾸는 방식,원작의 시대와 현대 사이를 교차시키는 방식, 제목만 빌려 오되 나머지 내용은 새로운 것으로 채우는 방식등이 있다.<로미엣과 줄리엣>은 이중 두번째 방식을 택하고 있다.

<댄싱 히어로>로 데뷰한 바즈 루어만이 감독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간적 배경은 90년대이며 영화 기법 또한 90년대식이다.이 영화는 지나치게 화려하고 지나치게 소란하고 지나치게 트릭을 쓰고 있다.특히 도입부가 상당히 경박해 보이는데 그것은 엘리자베스 시대를 90년대로 치환해 놓았을 때의 어색함을 가려보려 했던 힘겨운 노력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건과 배경이 따로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더욱 강화될 뿐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9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주인공들은 결코 현대적이지 않다.주인공들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인물들처럼 운명의 힘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이 영화의 가장 큰 아쉬움은 바로 여기에있다. 다시 말해서 세익스피어의 작품에 자주 나타나는 「운명의 힘」이란 인간의 교만함을 단죄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장치였으며, 따라서 오늘날에는 더이상 유용한 것이 아님을 감독은 생각해야 했었다. 그런 고려가 없었기에, 신부의 전보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로미오의 비극은 운명이라기보다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로미오가 독약을 마신 바로 그 순간,깨어나는 줄리엣의 비극 또한 너무 신파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랑을 신비화시켜 표현하지 않았다는 미덕을 갖고 있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이 영화는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은지 오래 되는 우리에게 자명한 사실을 일깨워 준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너무도 어리다는 것 말이다. 아울러 그들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시끄러우며, 참지 못하는 성격을 갖고 있고, 단순하며, 문제를 일으키기를 좋아하는지, 죽는다는 것을 얼마나 간단히 생각하는지도 가르쳐 준다. 갑자기 눈뜬 사랑 때문에 다른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게 된 자, 그들이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미덕은 또 있다.그것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를 보는 일이다.그는 사랑을 품어버린한 남자가 겪어야 하는 가슴 떨림, 환희, 우울함, 격정 등을 놀랄 만큼 생기 있게 연기한다. 클레어 데인즈(줄리엣 역)도 적절한 캐스팅이었다고 생각된다. 장난끼 많고 상업적인냄새를 너무많이 풍기는 영화였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역을 맡은 두 배우만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채명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