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가 최근 그룹 계열사인 삼성전자를 제외한 삼보컴퓨터와 시게이트 등 국내 및 해외의 다층PCB(MLB)관련 「빅 바이어」로부터 발을 서서히 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MLB업계는 삼성전기가 지난달 말을 기점으로 시게이트에 대한 공급대열에서 발을 빼고 있으며 삼보에 대해서도 일부 고부가 제품 위주로 공급을 제한키로 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삼성의 공급전략 변화의 진의를 파악하고 이에따른 영향 분석에 분주한 모습들이다.
삼보컴퓨터는 국내 MLB 경기가 극도로 부진했던 지난 7~8월까지만 해도 미국 IBM에 대한 메인보드 OEM공급량을 비롯한 PCB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삼성전기를 비롯한 LG전자, 이수전자, 대덕전자 등 국내 MLB 4사가 한장이라도 더 수주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였던 업체.
세계 1위의 컴퓨터용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메이커인 싱가포르 시게이트 역시 현재까지는 국내 MLB업체들의 최대 직접 수출선으로 불과 몇개월전만 해도 LG전자, 삼성전기, 이수전자 등이 양면에서 6.8층 PCB에 걸쳐 각각 월 1만장 안팍의 대형 물량을 공급했던 해외 굴지의 MLB수요처다.
이 때문에 삼성전기가 비록 지난 3.4분기 말부터 계열 삼성전자로부터의 D램모듈, 노트북PC, CDMA이동통신시스템 및 단말기, TFT LCD 등 비교적 고가, 고부가의 MLB수주 급증과 에릭슨 등 신규 수출선 확보 등으로 MLB라인이 풀가동 수준에 도달해 신규수주에 대한 여유가 별로 없다고 하더라도 굳이 삼보와 시게이트 같은 빅 바이어들을 포기(?)하려 하는 근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업계관계자들의 관심과 각종 해석이 분분하다.
일부 업계관계자들은 『삼보와 시게이트의 주력제품이 계열 삼성전자와 같은 경쟁업체란 점에서 삼성전기 MLB공급의 미래가 불투명한 것이 주된 이유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즉,국내 PC 및 프린터시장의 최대 라이벌인 삼보나 삼성그룹이 차세대 전략사업중 하나로 추진할 HDD사업의 궁극적인 「장벽」인 시게이트와의 관계를 무한정 유지할 수는 없으리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비록 단위 구매량은 크지만 삼보나 시게이트가 국내 및 대만 MLB업체간의 과열경쟁으로 상대적으로 가격조건이 나빠짐에 따라 「시황이 좋을 때 부가가치가 낮은 쪽을 버린다」는 실리적인 측면이 보다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기 MLB사업부의 한 관계자도 『기업의 목적이 이윤 추구인데 굳이 조건이 좋은 오더를 놓아두고 기존 거래선만 고집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전기가 삼보와 시게이트에서 발을 빼는 이유가 무엇이든지간에 LG전자, 이수전자 등 기존 경쟁업체들의 운신의 폭은 그만큼 넓어지게 돼 공급량은 다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삼성의 공백을 노린 국내 중견 MLB업체들의 신규 참여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한편 중견 MLB업체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기의 MLB 공급전략 변화는 해당 기업의 입장에서는 상황변화에 대응키 위한 당연한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불황일 때는 물량 및 가격공세로 상황을 어렵게 해놓고 경기가 좀 좋아지면 가장 먼저 발을 빼는」 대기업들의 영업행태가 재연되는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고 말했다.
<이중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