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電子)를 잘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로부터 『멀티미디어라는 것이 도대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곤 한다. 최근에도 어느 경제지 기자가 방문해 『해태전자가 멀티미디어사업을 할 계획이라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예정입니까』라는 질문을 해왔다. 이럴 때마다 번번이 설명하기도 어렵고 하여 옛날에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을 설명해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곤 한다.
「상류사회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있었던 일이다.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종업원이 조심스럽게 날라다 4명의 손님 앞에 올려 놓았다. 커다란 접시 위에는 은빛 뚜껑이 덮여져 있고 종업원이 하나 둘 셋하고 뚜껑을 열려 하고 있었다. 관객들은 음식점의 수준으로 보나 접시의 크기로 보아 아주 먹음직스러운 고급 음식이 들어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하고 뚜껑이 열렸다. 관객들은 모두 까르르 웃었다. 그 넓은 접시 위에는 조그마한 소시지 한 토막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아직까지 멀티미디어는 이런 수준의 산업이 아닐까. 앞으로 벌어질 일의 크기와 기대는 대단하겠지만 아직까지는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다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렇다고 멀티미디어 산업을 과소평가하거나 다된 다음에 참여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이는 분명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일이다.
나는 전자산업에 종사한 덕분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되는 동계전자전(CES)과 컴퓨터쇼(COMDEX)를 16년 가까이 보아 왔다.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컴덱스 전자전도 물론 다녀왔다. 얼마 전 신문지상에서 나는 올해 컴덱스쇼가 과거보다 특이하거나 눈에 띄는 것이 없이 질이 떨어진 것 같다는 한국 참관자들의 의견을 담은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흐름을 보지 못하고 눈앞에 나타난 현상만을 보는 눈을 가졌거나 단편적으로 한두번 본 사람들의 의견이라고 믿고 싶다.
과거의 컴덱스는 해마다 기술이나 제품의 변화가 뚜렷이 눈에 보이는 변천의 시대였기 때문에 매년 새로운 것이 소개되는 것으로 느껴진 것은 당연하다. 예를 들면 PC의 성능이 286.386, 486, 펜티엄 등으로 매년 달라졌고 운용체계도 MS-DOS, 윈도 3.1, 윈도95 등 관심을 끄는 이슈들이 매년 등장했으나 이제는 변화의 속도가 줄어들고 나올 만한 얘기들은 모두 나왔기 때문에 눈에 띄는 변화는 없는 것처럼 보이나 이미 나와 있는 기술들의 깊이가 더 깊어지고 관심의 범위가 달라졌기 때문에 아마도 눈에 띄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나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이러한 변화를 접하면서 앞이 더욱 답답해짐을 느꼈다. 왜냐하면 작년부터 기술변화의 속도가 줄어들고 창의적인 변화가 줄어들면서 그동안 움츠리고 있던 일본업체, 특히 대기업들의 움직임이 심상치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70년대의 미국전자전에 일본의 가전업체가 침범하기 시작해 80년대부터는 거의 미국의 전자쇼가 마치 일본의 쇼처럼 느껴질 정도로 일본업체 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제는 일본의 대기업들이 컴퓨터, 멀티미디어 부문에 대한 집중적인 공략을 시작할 것으로 판단된다. 무서운 일이고 큰 일이다.
일본이 시장을 점령하면 한국 기업들로서는 미국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던 때보다 훨씬 어렵고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멀티미디어는 마이크로프로세서(MPU)나 운용체계만을 쥐고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각종 입출력장치와 이미지 처리장치 등 여러 종류의 하드웨어가 집합된 종합기술이기 때문에 이 분야의 모든 기술을 쥐고 있는 일본 기업이 이제는 활개칠 때가 아닌가 한다. 디지털 카메라, TFT LCD, 스캐너, 프로젝터, 반도체, CD롬, DVD 등의 메커니즘 등 셀 수 없이 많은 요소기술들을 일본기업이 쥐고 있다.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무서운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 기업인들은 인식을 하고 이에 적극 대처하지 않으면 과거에 그랬듯이 일본만 좋은 일 시켜주는 꼴이 될것 같다.
제2차대전때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듯 멀티미디어섬의 총공격이 바야흐로 시작되었음을 가슴깊이 느껴보자.
<周鍾益 해태전자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