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M&A에 멍드는 방송 인허가 (중)

제안서 평가방식의 문제점

지난 몇년 동안 정부가 방송 및 정보통신분야의 신규사업 허가 시에 채택했던 방식은 이른 바 「사업제안서평가(RFP, Request For Proposal)」였다. 지난해 6월 PCS, 국제전화 등 27개 신규통신사업자를 선정할 때도 RFP 방식에 의한 심사로 사업자를 선정했으며 1, 2차 지역민방과 케이블TV 프로그램공급업자(PP) 및 1차 종합유선방송국(SO) 사업자 선정 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신청서를 접수하고 서류와 청문형식으로 심사한 후 사업자를 선정하는 RFP 형식은 지금까지의 과정을 볼 때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그 출발선상에서부터 공정성과 객관성 시비에 휘말리고 있으며 사업자선정 이후에도 인수 및 합병(M&A)이라는 복병을 맞고 있다. 특히 인허가 행정을 무력화시키는 M&A 사례는 앞으로 더 발생하면 했지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통신 및 방송분야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RFP 심사의 첫 번째 문제는 심사과정이다. 종합유선방송과 지역민방 허가 시 공보처는 사업신청자가 제출한 방송운용에 대한 향후 계획과 현재의 사업여건(재정적여건, 주주의 구성, 기술적 여건, 공익사업현황) 자료를 바탕으로 외부 전문인사을 초빙, 심사했다.

문제는 각 사업자 신청자가 제출한 계획서들마다 약간씩의 차이를 두고 있지만 대부분 해당사업 신청자가 아닌 외부 컨설팅 전문가들이 작성한 「모범답안」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모범답안에 가까운 사업계획서를 평가하고 이를 차별화, 사업자를 선정한 것이다.

최근의 2차 지역민방사업자 선정 시에서도 탈락기업들은 겉으로는 결과에 승복했을지 몰라도 내부적으로는 서류 및 청문심사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인 기업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억원을 들여 외부 컨설팅전문가에게 맡긴 「하자 없는」 모범답안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정통부가 지난해 6월 신규 통신사업자 선정에 참여했다가 탈락했던 모전자업체의 대표 A씨는 심사위원들에 대한 극도의 불쾌감을 안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발표된 기술심사결과, 자신들의 사업계획서가 사료업체에도 밀리는 꼴찌였기 때문이다. A씨는 『다른 것도 아닌 기술심사에서 컴퓨터 및 통신업체가 꼴찌를 한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탈락기업들은 이처럼 심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물론 심사위원들의 채점방식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록 인허가권자가 공명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를 대상으로 서류심사와 청문심사를 병행하고 있을지라도 탈락기업들은 그 심사방식 자체를 부정한다.

지난해 11월 공보처는 2차 지역민방 사업자선정과 함께 각 심사위원들의 평가결과를 공개했다. 이를 본 탈락업체의 한 관계자는 『특정부문에서는 1위를 준 심사위원이 있고 꼴찌를 준 심사위원이 있다』고 전제하며 『대학 교수나 일간지 논설위원은 그런다해도 노동이나 환경전문가가 방송편성 및 운용이나 경영계획의 적정성까지 심사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문제 아니냐』고 반문했다. 심사방식 자체에도 동의할 수 없다는 주장인 것이다.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업체들이 정치적 특혜시비나 유언비어의 난무 등은 차치하고 심사방식 자체를 문제삼고 있다는 것은 예사로이 넘길 수 없는 사항이다.

신규사업자 허가 이후의 M&A와 관련해서는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현재 인허가권자는 지분매각에 대응하기 위해 사업자 허가 이후 몇년 동안 지배주주 변경을 금지하고 불가피한 지분변동에 대해선 주무부처의 인가를 받도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외규정은 해당 기업의 편법과 모기업의 M&A와 관련해서는 무용지물이 될 위험성마저 있다. 지분변동과 관련해 많은 사례가 있고 끊임없는 인수설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대신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 비록 인허가 대상이었다고 할지라도 사유재산의 변동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인허가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제반 문제점들과 이후의 M&A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대응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에 와있는 것이다.

<조시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