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산업계에서 단지 이름 석자의 무게만으로도 한 부문의 「대가」 대접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단연 전길남 교수(KAIST 전산학과)가 꼽힐 것이다. 일본에서 성장하고 미국 유학과 미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을 거쳐 정부의 해외 한국인 과학자 유치정책에 호응, 국내에 정착한 그는 오늘날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컴퓨터 네트워크부문의 「산 증인」이자 「대부」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언론사 과학담당 기자들로 구성된 과학기자클럽으로부터 「96 올해의 과학자」로 선정된 전 교수는 이동만, 박현제, 허진호, 정철 박사 등 벤처기업의 선두에 서 있거나 외국 유명 컴퓨터업체의 연구원으로 일하는 「기라성」 같은 제자를 길러낸 「행복한 선생님」이기도 하다.
전 교수는 그의 독특한 이력을 알고 있는 기자가 『지난 일이지만 미국의 최고 수준 연구소에서 앞날이 보장된 활동을 뒤로 하고 귀국하기까지 고민은 없었느냐』고 묻자 단번에 이를 우문(愚問)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지난 80년대 초 귀국했지만 그 결심은 이미 고교 3학년 때 이루어졌다. 일본에서 성장한 탓에 그때 이미 자신의 정체성이나 인생 항로를 두고 고민한 끝에 한국에 가 무엇인지 기여를 해보자는 「작심」을 했다. 이 때문에 대학도 문과보다는 한국서 곧바로 적응할 수 있는 이과, 그 중에서도 전자공학을 선택했다고 한다.
전 교수는 대학 졸업 후 곧바로 한국행을 추진했지만 『현재 한국의 과학기술계에서는 프로젝트 리더급을 원한다』는 한 선배의 충고에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UCLA에서 박사 학위를 땄고 그 후부터는 승승장구, NASA 산하 연구소에서 프로젝트 매니저에까지 올랐다. 때마침 정부의 해외과학자 유치정책으로 아무 망설임 없이 귀국, 과학기술원 교수가 됐다.
그는 오늘날 국내산업 표준으로 정착된 통신 프로토콜 TCP IP를 도입한 장본인이다. 80년대 초만 해도 TCP IP는 세계 시장 점유율이 1%에도 못미쳤고 대부분의 국내 전문가들도 『IBM OS와 네트워크를 쓰면 된다』고 반대했지만 그는 오픈 시스템의 국내 적합성을 들어 이를 관철했다.
전 교수는 『한국인의 정서는 종속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어렵더라도 우리 것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원한다. 또 한국은 다행히 오픈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는 최소 규모를 갖추고 있다. 대만이나 싱가포르와는 규모에서 다르다』고 말했다.
특히 전 교수는 『미국에서의 경험으로 TCP IP의 소스를 가져올 수 있었고 미국 이외에서는 한국이 첫번째 고객이 됨으로써 현재까지 15년 이상의 네트워크 노하우가 축적되는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쌓아올린 국내 네트워크 기술 노하우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이 때문에 『한국의 네트워크 수준은 현재로서는 미국을 제외한다면 일본이나 독일 등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자평한다. 또 『KAIST를 거쳐간 젊은 인재들의 수준 역시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을만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일본 NTT로부터 80년대 후반 『부럽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미국에 인터넷 부문에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고 관련 보드를 한국 일본 독일이 함께 받아갔지만 이를 제대로 소화한 것은 한국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의 제자 중 HP 본사에서 워크스테이션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이동만 박사의 경우는 우리 연구진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와 몇 개월간 일해 본 현지의 동료들이 이 박사의 출신교를 묻는 것은 『MIT냐 스탠퍼드냐』」라는 것이다. 이 박사는 유학 경험 없이 KAIST 졸업 후 곧바로 미국 HP 본사 연구진에 합류한 「희귀한(?) 케이스」이다.
전 교수는 『정보통신이 국가 경쟁력이 되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90년대 초반까지는 네트워크에서 우리와 기술을 견주던 일본이나 독일이 최근 21세기 핵심 테크놀로지의 하나로 인터넷에 주목하면서 국가 전략사업으로 선정, 여기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그는 『국가 정책은 모든 분야를 커버할 수 없기 때문에 특정분야에 집중해야 하고 그 중의 하나가 인터넷부문』이라고 지적하고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정부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선진국은 물론 대만에도 추월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곁들였다.
전 교수는 『이것은 「선택의 문제」』라고 했다. 삼성이 반도체를 처음 시작할 때를 상기하면 「네트워크」 「인터넷」이라는 선택과 집중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큰 돈이 안되고 그렇다고 뚜렷한 비전이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누군지 반드시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관심을 갖는 것은 정부와 대기업의 몫이다.
그는 이런 선택은 우리가 선진국이거나 선진국에 진입해야 한다는 판단을 근거로할 때 더욱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후진국이라면 선진국의 흉내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과학자의 연구는 실생활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전 교수는 그 때문인지 제자들 중 연구소에 몸을 맡기는 사람보다는 기업을 창업하는 인물이 많다. 앞에 열거한 「박사들」이 좋은 예이다. 제자들은 전 교수에게서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사고」를 배웠다고 입을 모은다.
전 교수는 암벽등반 등 등산과 바다를 찾는 것이 취미이다. 과학자의 생활이라는 것이 연구실에 갇혀서 두뇌를 「고문」하는 것이어서 취미는 정반대로 자연을 숨쉬고 호흡하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서울과 대전을 오가는 바쁜 생활로 이를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이택기자>
*전길남 교수 약력
1943년 1월 3일생
1965년 일본 오사카대학 전자공학과 졸업
1969년 록웰 인터내셔널 컴퓨터시스템 디자인부 엔지니어
1974년 동대학 시스템 엔지니어링 박사
1980년 JET PROPULSION 연구원
1982년현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