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 때이른 오스카상 열풍

제 69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수상이 예상되는 할리우드의 영화들이 잇달아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어 충무로가 벌써부터 오스카 열기에 휩싸였다.

특히 관심이 쏠리는 작품은 <영국인 환자>와 <에비타><샤인>등.

<영국인 환자>는 현대그룹 산하 금강기획이 영상산업 진출 이후 처음 선보이게 될 외화개봉작이고,마돈나가 주연한 <에비타>는 미도영화사가 수입하고 SKC가 배급을 맡았고,<샤인>은 하명중영화사와의 협력계약에 따라 제일제당이 극장배급에 나서고 있다.

오는 3월 24일 오후 6시(현지시각)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슈라인 어디토리엄(Shrine Auditorium)」에서 열리게 될 「97아카데미 영화제」는 아직 후보작조차 발표되지 않은 상태다. 지난 8일 5천여명의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배부된 후보지명 투표용지가 모두 회수되고 세계 최고의 비밀유지로 명성이 나있는 러프라이스 워터하우스의 회계사들이 그 결과를 집계해 오는 2월 11일 새벽 5시 30분 사무엘 골드윈 극장에서 발표할 때까지는아무도 후보작을 알 수조차 없다.

그러나 이 세편의 영화는 미식축구나 NBA농구 결승전 못지 않은 어마어마한 판돈을 걸게될 내기 도박사들에 의해 후보작 지명 가능성을 인정받은 작품들이다.

이중 가장 유력한 후보작은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골든 글로브7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는 <영국인 환자(원제 : English Patient)>. 스리랑카 태생으로 밀러언 셀러 작가인 마이클 온다체의 소설을 영국감독 앤서니 밍겔라가 스크린에 옮긴 이 작품은 2차대전이 끝날 무렵 이태리의 한 수도원에서 죽음을 맞게된 영국인환자가 간호사에게 들려주는 애절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다. 헝가리 귀족출신의 탐험가인 주인공이 유부녀와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두 사람의 불륜을 감지한 남편의 광기가 사막 한가운데서 비행기사고를 불러오면서 결국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게 된다는 내용.

가난한 농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퍼스트 레이디 자리에 오른 에바 페론(1919-1952)의 짧지만 파란만장했던 삶을 그린 <에비타>도 최종후보 지명 가능성이 있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핑크 플로이드의 벽>에서 현란하고 전위적인 영상으로 마니아를 사로잡았던 알라파커감독이 메가폰을잡아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로 이미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뮤지컬을 스크린 위에 부활시켰다. 싸구려 댄서에서 일약 팝의 여왕으로 등극한 마돈나가 에바 페론역으로 낙점되고 마돈나의 공개적인 프로포즈를 거절한 일화로 유명한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가공의 인물 체 게바라 역으로 결정되면서 케스팅 단계에서부터 화제가 만발했던 작품. 게다가 창백한 얼굴에 빨간 입술, 웨이브지게 틀어올린 머리, 사치스런 깃털과 보석치장, 허리가 잘록한 스커트 등 40년대 에바페론의 스타일이 촬영이 끝나기도 전에 패션계를 강타하는등 상업적 포장술이 대중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시켰다.지난해 흥행작 <브레이브 하트>에 작품상의 영예를 안겨준 아카데미의 성향으로 볼때 수상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영화라는 평을 받고 있다.

현역 피아니스트(데이비드 헬프갓)의 정신분열과 극적 회생을 그려 지난해 호주 아카데미 11개 부문을 휩쓴 스코트 힉스 감독의 <샤인>도 만만치 않은 후보작. 강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피아노수업을 받으며 어린나이에 천재성을 인정받았던 주인공은 런던 왕립음악대학으로 유학을 떠나지만 피아니스트의 무덤이라는 별명이 붙은 고난도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연주한뒤 무대위에서 쓰러진다. 그뒤 10년 동안 정신병원을 전전하다가 15살 연상인 헌신적인 아내 길리암을 만나 정신세계의 안정을 되찾고 소도시나 시골 작은 레스토랑의 얼마 안되는 청중들 앞에서 열정적인 연주를 계속한다는 내용. 라흐마니노프부터 슈만, 쇼팽, 리스트에 이르기까지 주옥같은 30곡이 데이비드의 실제연주로 채워져있어 아마데우스에 이어 다시한번 관객들에게 콘서트 홀의 감동을 재현해줄 만한 영화다.

그밖에 도색잡지 허슬러 발행인 래리 플린트의 일대기를 그린 밀로스 포먼 감독의 <국민 대 래리 플린트>, LA 영화비평가협회가 지난해 최우수영화로 선정한 마이크 리의 <비밀과 거짓말>, 코헨 형제가 만든 블랙 코미디 <화고>, 파격적인 형식의 사랑이야기 <브레이킹 더 웨이브> 등 후보작으로 거론되고 있는 영화들이 이미 흥행에 들어갔거나 개봉을 준비하고 있어 영화마니아들에게 풍성한 겨울 극장가를 약속하고 있다.

<이선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