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B업계, 단면시장 놓고 미묘한 신경전

대덕산업, 새한전자, 코리아써키트 등 인쇄회로기판(PCB) 전문업체들이 지난해를 기점으로 답보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단면PCB시장을 놓고 미묘한 신경전을 전개하고 있다.

TV, VCR, 오디오 등 가전시장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는 국내 단면PCB시장은 일본 CMK에 이어 세계 2위의 단면PCB 생산업체로 올라선 대덕산업의 초강세가 수십년째 지속되고 있는 데 최근들어 새한전자와 코리아써키트가 단면 영업을 대폭 강화, 대덕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생산량 면에서는 각각 자사물량과 삼성전자 수요를 상당부분 소화하고 있는 LG전자와 청주전자가 오히려 대덕의 실질적인 경쟁업체이지만 이들 양사가 단면사업을 축소하고 다층PCB(MLB)와 양면으로 주력사업을 전환, 새한전자와 코리아써키트가 대덕의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하고 있다.

새한과 코리아써키트는 특히 70년대부터 대덕산업과 함께 국내 PCB업계의 트로이카체제를 구축, PCB부문에서 만큼은 지명도가 다른 업체에 비해 탁월하게 높은 데다 국내 가전업계의 경기침체와 해외진출로 단면시장이 갈수록 정체 내지는 위축될 것으로 전망돼 대덕과의 불꽃튀는 「제로섬 게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먼저 선제공격을 가한 쪽은 새한전자로 지난해 장차 단면시장의 물량싸움에 대비해 구미공장의 설비를 대폭 증설, 대덕의 절반수준인 월 20만장대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전면전을 선언했다. 새한은 아직 50%에도 못미치는 가동률을 보이고 있으나 대덕엔 만만찮은 상대로 부각되고 있다. 더욱이 새한은 세트업계의 해외진출을 겨냥한 세계화에서도 일단 기선을 제압한 상태다. 이 회사는 올해안에 멕시코, 중국공장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에 착수, 월 최대 15만장의 단면PCB를 생산할 수 있는 자동 3개 라인을 구축,현지 진출한 가전3사를 집중 공략할 계획이다.

코리아써키트의 물밑 움직임도 3사간의 미묘한 신경전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현재 메탈PCB를 포함, 자동 2개 라인에 최고 월 10만장의 단면PCB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코리아는 지난해 대덕산업 출신의 Y부장을 영입하고 하반기부터 영업력을 확대, 침체에 빠진 단면사업 되살리기에 나섰다. 최근엔 대덕과 새한이 분점중인 대우전자의 업체승인을 획득, 조만간 공급에 착수할 예정이다. 생산능력이나 실질 생산량을 놓고 보면 이 회사의 현재 위상은 대덕산업이나 새한전자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기술면에서는 나름대로 국내 PCB산업을 리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어 PCB구매처 다변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세트업계를 자극하기엔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이 회사는 특히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의 현지법인을 활용, 멕시코, 남미 등의 국내 가전업체 공략을 추진하는 등 대덕과 새한을 계속 자극하고 있다.

그런데도 현재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월 40만장대의 단면PCB를 생산중인 대덕의 품질수준, 생산성, 시장지배력, 원가구조 등을 두루 종합할 때 대덕의 30년 아성이 쉽게 흔들릴 것으로 속단키는 어렵다. 실제로 대덕은 국내 단면PCB 시장규모가 95년에 비해 5% 이상 줄어든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에도 17% 가량 성장하는 강세를 보였다. 대덕은 또 새한이나 코리아에 비해 비록 해외투자에는 한발 늦었지만 지난해초 필리핀에 진출, 현지화의 닻을 올린 상태며 국내 공장만으로도 특유의 높은 수율과 생산성을 바탕으로 『적어도 2000년까지는 세계 어느 곳에서 어느 업체가 만든 단면PCB와도 가격경쟁이 가능하다』고 자신하고 있다.

여하튼 LG전자와 청주전자의 사업축소 방침에 이은 새한전자와 코리아써키트의 잇따른 단면영업 강화에서 비롯된 숙적 PCB 3사간의 미묘한 줄다리기는 당장의 시장구도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와 같은 단면시장의 정체가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경쟁이 보다 치열해져 복잡한 그림으로 나타날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