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현대를 특징지어 주는 다양한 요소들 중에서도 가장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는 핵심 요소로 통한다. 그동안 급격하게 발전해 온 과학의 성과가 오늘날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국방, 외교 등의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으로서 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없이 주어진 임무를 충실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분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성인들이 지녀야 할 소양 중에서 과학에 대한 지식은 참으로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과학기술에 대한 무지 때문에 빚어지는 화가 끊이지 않고 발생해 뜻있는 과학도들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영국의 문필가인 파킨슨은 일찍이 「파킨슨의 법칙」이라는 책에서 「의제(議題) 한 항목을 심의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그 항목의 지출액에 반비례한다」는 유명한 말로써 이러한 세태를 꼬집은 적이 있다. 정치인들이 의회에서 흔히 수백억원짜리 예산을 쉽게 통과시키면서도 정작 몇푼 들지 않는 직원주차장 건설에 대해서는 시시콜콜 따지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현상은 전적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며 과학기술 교육의 대중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물리학과 출신 문필가 C.P.스노우는 지난 59년 유명한 「두 문화」라는 강연을 통해 『서구 특히 영국에서 과학적 문화와 인문적 문화의 격리와 대립이 문화 그 자체는 물론 정상적인 사회의 발전에도 장애가 되고 있다』며 『전통적인 교육제도에 근본적인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고등학교 때부터 학생들을 문과와 이과로 구분, 폭 넓은 전인교육을 시행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은 고등학교에서의 문과와 이과의 구분은 2차대전 이전의 일본식 교육제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도이다.
교육부는 올해 서울 소재 10개 고등학교를 선정, 문과와 이과의 구별이 없는 실험교육을 시도하겠다고 최근 발표한 바 있다. 교육부의 이러한 시도는 만시지탄이 있지만 매우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러한 시도를 대학교육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대학교에서의 교육은 문과계 대학과 이과계 대학으로 엄격히 구분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과계 대학생에게 자연계 교양과목을, 이과계 대학생에게 인문계 교양과목을 폭 넓게 수강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따라서 적어도 대학 1.2학년 때 주로 수강하는 교양학부의 교과 과정에서는 이러한 구분을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 과학에 대한 교육은 학교에서 끝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내교육 또는 평생교육 기관에서도 빠른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과학관련 교육과정의 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다.
유교적인 전통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현대 지성인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소양으로 인문사회학 계통의 지식을 중시하는 풍조를 하루 아침에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과학에 관한 지식이 얼마나 정당하게 평가받느냐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安世熙 전 연세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