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전자부품업계는 경제적인 요인과 사회, 정치적인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격변기가 될 전망이다. 불황과 겹쳐 새해 벽두부터 불어닥친 총파업은 이미 부품업계에도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으며, 연말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각종 돌발변수가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는 상황이다. 또한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시장개방과 세트업체들의 해외생산 확대 및 이와 관련한 구매방식의 변화, 중소 부품업체들을 겨냥한 인수 및 합병(M&A)바람, 그리고 불황타개를 위한 정보통신 관련 부품사업 확대 등은 올해 부품업체들의 화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개방
우리나라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확정으로 한층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이는 시장개방화의 조류도 넓게는 구조변혁의 물결을 타고 있는 국내 전자업계, 좁게는 부품업계 전반에 유무형의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본지가 최근 전자부품업계 최고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올해 경기에 미칠 최대 변수로 환율 및 금리변동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전체의 23%가 시장개방을 꼽아 시장개방이 올해 부품업계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음을 입증했다.
물론 OECD 가입으로 인한 적지 않은 기대효과가 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장개방의 물결속에서 외산 전자제품에 잇따라 안방을 내주고 있는 전자업계로서는 「개방」이란 컨셉트를 바탕에 깔고 있는 이른바 OECD정신으로 인한 체감온도는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해 유통시장이 완전 개방되면서 촉발된 일본 등 외국제품의 시장잠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전업계는 올해 국내시장에서도 더욱 힘든 싸움을 벌이게 될 것으로 보여 여전히 가전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부품업계의 어려움도 한층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더구나 앞으로는 개방의 범위가 시장에 국한되지 않고 정부의 국책개발자금 등 對중소기업 지원축소, 외국에는 진입장벽으로 비춰져 온 수입선 다변화 및 원산지 증명제 해제, 중소기업 고유업종 철폐 등으로 서서히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부나 대기업이 중소 부품업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명분도 엷어져 영세한 국내 부품업계에 개방의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개방은 또한 궁극적으로 외국산 전자제품과 부품의 저가공세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일본은 메모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서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저임금국인 중국 및 동남아에서 생산한 부품을 무기로 대대적인 저가공세를 한층 강화할 것이 확실시된다.
정보통신부품 참여 붐
전자업계 관계자들의 대부분은 올해가 국내 전자산업의 중심이 가전에서 정보통신으로 넘어가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전이 수년째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반면 정보통신시장은 지난해 6월 7대 신규 통신사업자 선정과 통신사업의 본격적인 경쟁체제 도입을 계기로 올해부터 대량수요를 토해낼 것이 확실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 셀룰러 이동전화시장의 플랫폼으로 떠오른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의 디지털 휴대폰시장이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을 비롯해 조만간 본격적인 서비스에 착수할 CT2, 올해안에 잇따라 등장할 예정인 주파수공용통신(TRS), 개인휴대통신(PCS) 등이 통신시장에 새바람을 몰고올 전망이다.
이같은 전자산업의 환경변화는 곧바로 후방업종인 부품업계의 구조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최근 들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벤처기업형 통신부품 전문기업군과는 별도로 기존 일반 부품업체들의 통신부품시장 참여가 올해 대대적인 붐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본지의 설문조사에서도 부품업계 최고경영자들의 80% 이상이 가전의 지속적인 침체와 정보통신의 부상에 대응, 사업구조를 고도화하기 위해 신규사업을 구상하고 있으며 그 대상으로 전체의 73.6%가 정보통신을 지목, 부품업계의 정보통신 부품사업 참여 붐을 예고했다.
통신부품 바람은 비단 일반 부품업계에 국한되지 않고 비전자업종의 기업들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시장 및 경쟁력의 한계에 봉착한 이른바 한계업종에 속한 상당수 중견 및 대기업들이 지난해부터 첨단 전자산업으로의 진출을 위한 교두보 확보 차원에서 통신부품을 차세대 전략사업으로 선정, 올해부터 잇따라 명함을 내밀 것으로 전망된다.
M&A열풍
올해는 어느해보다 M&A바람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특히 전자부품업체들은 올해 가장 유망한 M&A대상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5월부터 적대적 M&A가 사실상 허용되기 때문에 섬유, 시멘트 등 한계사업을 중심으로 해온 중견 및 대그룹이 정보통신시장 진출을 위해 전자부품업체들의 주식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며, 지난해 미국 EZC그룹이 인쇄회로기판(PCB)업체인 한일써키트를 인수한 사례에서 보듯이 외국업체의 국내 전자부품업체 인수사례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국내 중견그룹들은 엔케이, 한솔, 신호 등 최근 적극적으로 M&A에 나선 그룹들이 이를 발판으로 몸집불리기는 물론 대외이미지 고양에도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추가로 유망한 전자부품업체를 인수, 정보통신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 마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M&A대상에 오르고 있는 전자부품업체로는 △대주주 지분이 20% 이하인 업체 △업종이 정보통신과 연관성이 높은 업체 △연륜이 깊고 공장부지가 넓은 업체 등이 우선 고려대상이 될 것으로 보이며, 연간 매출액이 2백억원 미만인 중소업체들도 M&A대상 1차 리스트에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대기업에 의한 적대적 M&A에 대응, 전환사채 발행, 자기주식 매입, 유무상증자 등 부품업체들의 방어전략이 경기 외적인 또다른 주요변수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부 자금력이 풍부한 중견 상장업체를 제외한 대다수의 중소 부품업체들은 대기업의 M&A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업계의 전략마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중견업체들의 경우도 M&A를 막을 수 있는 대응전략이 현실적으로 보통주 매입 등 대규모 자금소요를 유발하는 쪽에 한정돼 있어 결국 자금난 증폭, 설비투자여력 축소 등의 후유증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트업계 해외진출 및 글로벌소싱
세트업계의 생산기지 해외이전 또한 국내 부품업계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국내 세트업체에 대한 매출의존도가 높은 부품업체들로서는 기존 공급물량을 보전하기 위해 세트업체의 일거수 일투족에 귀추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해외로 생산기기를 이전하고 있는 세트업체들은 올해부터 부품구매선을 전세계로 개방하는 이른바 「글로벌소싱」전략을 구사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어 부품업체들이 세트업체를 따라 해외에 동반진출하더라도 장밋빛 미래는 고사하고 안정적인 성장마저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최근 본지 설문조사에서도 올해 세트업계의 정책중 부품업계에 미칠 가장 큰 변수로 세트업체의 해외이전이 두번째로 많은 16.2%를 차지했다.
주요 세트업체들은 이미 컬러TV, 오디오, VCR 등에 이어 올해부터는 전자레인지, 세탁기, 냉장고 등 주력가전을 거의 대부분 해외에서 주력 생산할 예정이다. 특히 아직까지 최대 부품수요 품목인 컬러TV 및 VCR 등의 경우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등 가전 3사가 모두 올해 해외 생산비중을 60∼75%선으로 크게 확대할 방침이어서 앞으로는 이들 가전제품의 해외생산량이 국내생산을 크게 앞지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이미 한계에 도달한 국내시장에서 탈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또한 급격히 약해지는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되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현지생산, 현지판매 체제를 갖추고 있는 세트업체들의 해외이전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에 따라 부품업체들이 세트업체를 따라 생산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추세가 올해도 더욱 보편화될 것으로 보이며, 세트업계의 세계화에 대응한 부품업계의 세계시장 개척도 크게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품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