閔庚 (주)한국기술연구 소장
우리나라의 외채가 총 1억달러를 넘어서는 등 세계에서 손꼽는 빚쟁이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씁쓸한 마음에 앞서 차라리 철저한 국수론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다.
그뿐 아니다. 몇년 전만 해도 해외시장에서 국산제품을 매우 흔하게 볼 수 있었으나 최근들어 해외시장에서 국산품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무엇이 한국경제를 이토록 어렵게 만들었는가. 그 이유는 노사분규, 고임금, 국가정책 수행의 오류 등 여러가지를 들 수 있으나 필자는 전자, 전기분야에만 국한시켜 문제점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몇가지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우선 전자, 전기분야의 무역역조를 개선하려면 주요 국책사업의 수행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수행된 국책과제 중에서 가장 성공한 사례는 지난 75년부터 시행된 「전자교환기 개발사업」이다. 사전준비작업을 거쳐 20여년간 꾸준히 추진된 이 사업은 국책과제의 실행 모델을 제시했다.
그러나 최근에 국책사업으로 추진된 무선전화(무선호출기 포함), 종합유선방송, 고속정보통신망 건설 등 중요한 국책사업을 무역수지 면에서 살펴보면 대다수가 실패작이거나 잘못될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무선전화사업의 경우 고주파 회로분야 전문기술자가 거의 없는 상태, 즉 국가적으로 준비가 전혀 않된 상태에서 사상누각을 지어 외채를 증가시키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또한 종합유선방송의 경우 트리(Tree)형 망을 채택하는 등 이후 실시될 고속정보망에 필요한 루프(Loop) 또는 스타(Star)망 건설에 대비하지 않아 엄청난 외화를 낭비했다.
이렇듯 최근 진행된 국책사업이 실패를 거듭하고 외채증가에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은 국책사업을 너무 서둘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전자, 전기분야에서 무역적자를 줄이고 나아가 흑자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우선 최소한 20년 이상의 장기적인 국책사업 계획을 세워 국책연구소를 통해 기초부터 하나씩 추진해야 한다. 전자분야는 도로나 항만건설과 같이 한번 설치하면 수십년간 사용할 수 있는 분야로 지속적인 개발과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 장기사업이다. 따라서 이 분야에 대한 투자시 경제성의 문제를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
또한 전자, 전기분야에 많은 회사가 창업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자금지원이 병행돼야 하며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를 위해 소기업과 중소기업에 병역특례자를 우성배정하는 제도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금형설계 및 제작비용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정부지원기관이 설립돼야 할 것이다.
이밖에 공학도들이 이 분야에 자부심을 갖고 지속적인 연구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돼야 하며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획기적인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
지금까지 미시적인 관점에 전자, 전기분야 무역수지 개선방법을 몇가지 제시했다. 지금은 국가적으로 볼 때 상당한 위기상황으로 본다. 우리나라 국민이 외국에 나갔을 때 외국세관원의 몸 검색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요 국가정책을 입안할 때 20년 앞을 내대보는 거시적인 정책수립이 요구된다.
정부의 거시적인 안목과 함께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기술로 국가에 보답하고 투철한 장인정신을 갖추어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창조를 할 수 있는 자세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