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제 : 「살짝 돈 자들」이 본 세기말 풍경
<야수의 날>은 감독인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의 유우머 있는 상상력과 스페인 특유의 건강한 낙천성이 가미되어 관객에게 기괴한 즐거움을 주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재미는 주인공 엔젤 신부(알렉스 앙굴로 분)가 돈키호테를 연상시키고 호세 마리아(산티아고 세구라 분)가 산초를 생각나게 한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는 순간 배가된다. 돈키호테란 그가 어떤 상황에 놓이게되든 코믹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야수」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적그리스도를 뜻하며 「야수의 날」이란 적그리스도가 탄생하는 날을 말한다. 엔젤 신부는 요한 계시록을 오랫동안 연구한 끝에 적그리스도가 태어나는 시간을 알아낸다. 그러나 그 장소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적그리스도와 만나기 위해 고의로 악행을 저지른다. 불구인 거지앞에 놓여 있는 적선함에서 돈을 꺼내 가고, 자비를 구하며 죽어가는 자에게 「지옥에나 떨어져라」고 속삭이고, 기절한 처녀의 목에다 소형 주사기를 꽂기를 여러차례 해서 마침내 반 병 분량의 피를 빼낸다.
<야수의날>은 스페인에 유입된 혹은 유입될 수 있는 유럽의 세기말적 징후들에 대해 그들의 영웅인 돈티호테를 통해 문명비판을 가하고 있는 영화이다. 「유입될 수 있는」이라는 유보된 표현을 쓴 까닭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 돈키호테 유형이기 때문이다. 다 알다시피 돈키호테는 너무 진지하게 몰두한 나머지 정신이 살짝 돈 인물이다. 따라서 그가 본 세기말적징후들이 현존하는 것이라고 우리가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신에게 몰두하는 다른 인물들을 감염시켜버리는 비상한능력이 있다.호세 마리오, 카반 교수는 바로 그 희생자라 하겠다. 관객또한 그에게 너무 몰두하면 적그리스도 혹은 야수가 이 영화에 정말로 나타났었다는 착각에 휘말리게 될 지도 모른다.
따라서 적그리스도 혹은 야수가 돈키호테 신부가 쏜 총에 맞아 그다지도 무력하게 죽어버리는 이 영화의 끝에 대하여 크게 실망하지 않기로 한다.적그리스 혹은 야수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있었던 것은, 「마드리드를 깨끗이」라는 인종 차별적 구호를 외치며 잔혹한 테러를 일삼는 반달리즘과 사람들을 광란으로 몰아 넣는 데쓰 메탈 그룹 「사타니카」와 노스트라다무스를 이용해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사이비 종교집단과, 생전의 세계와사후의 세계가 실제로 공존한다는 믿음을 유포시키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흑색 지대」였다. 적 그리스도 야수란 바로 이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지칭하는 상징이 아니었을까.
<채명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