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스를 보면 마치 10여년 전의 상황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정치 쪽에서는 노동법과 안기부법의 날치기 통과와 실속없는 여야 설전을 봐야 하고, 경제 쪽에서는 한보철강에 대한 의혹시비 등이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선진국가가 2백여년에 걸쳐 이룩했던 산업화를 우리는 양적이나마 20여년 만에 달성했지만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의 시스템에서 이에 버금가는 발전을 이룩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가의 인적, 물적 자원낭비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과거의 선상에서 국력을 낭비하며 살 것인가. 물론 현재 나타나고 있는 문제를 덮어두고 가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뼈를 깎는 각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4년 앞으로 다가온 21세기를 위해 현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살펴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과거 국가발전 기회 상실의 역사와, 근세 초강국과 고소득국가들의 특성, 그리고 작금의 국내외 정보화 진행현황과 우리의 좌표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고려와 조선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국가가 도약할 수 있는 기회상실과 국가가 생존할 수 있는 기회상실이라는 중요한 역사적 교훈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지만 훨씬 나중에 금속활자를 발명한 쿠텐베르그가 이를 활용해 책을 대량 생산해 사회계몽과 과학혁명을 이루었다. 우리는 한글과 금속활자라는 기막힌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갖고도 출판으로 지식을 보급해 문화를 꽃 피우는 정보혁명에 실패, 획기적인 국가발전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세계적으로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전되는 시기였던 조선 말기에도 박지원 같은 실학자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산업화 조류에서 탈락했고 결국은 근대국가 건설에 실패해 나라 잃는 고통의 역사를 겪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바탕으로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 진입에 성공했다.
근세 이래 세계발전을 주도한 국가로는 포르투갈(16세기), 네덜란드(17세기), 영국(18∼19세기), 미국(20세기) 등이 있고 강대국이 아니면서도 창조적 두뇌집단과 인프라 등 사회시스템을 구비해 고소득 국가가 된 스위스와 싱가포르 등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시대상황의 환경변화를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수용, 자기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는 점이다.
70년대 이래 미국은 유럽, 일본, 한국 등의 업체가 저가중심으로 제조업을 공격하자 경쟁력을 상실하는 제조업부문은 과감히 버리고 시스템, 서비스 등 사회발전 조류와 맥을 같이하는 구조개편을 함으로써 90년대 들어 제조업 중심의 일본의 경쟁력을 무력하게 하고 있다. 사업구조 고도화보다는 기존 사업을 중심으로 마른 수건짜기식으로 대응한 일본은 지금 힘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산업화의 물결이 힘을 상실하면서 사회 및 산업의 중심가치가 제조중심에서 정보, 지식, 소프트로 이전하고 있는 시대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은 정보화 지수로는 미국의 8분의 1, 싱가포르의 4분의 1 이하이고 정보통신부문 1인당 투자액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의 42%, 일본의 48%, 대만의 74%에 지나지 않는다. 컴퓨터 등 정보통신기기산업도 88년 이래 대외경쟁력 계수가 계속 하락하고 있고 수입의존율은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60년대 농업중심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변모할 당시 우리와 산업화된 선진국의 격차와 산업국가에서 정보화국가로 변모가 요구되는 현시점에서 우리와 정보화된 선진국 격차를 비교할 때 별로 나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정보화 흐름의 중요성에 따라 대통령은 작년 10월14일 정보화전략을 발표했고 추진과제로 정보화를 통해 생산성 높은 정부, 산업정보화 투자, 교육 정보화, 정보통신산업 육성대책, 정보화 제도여건 미비, 통일대비 정보화 등을 제시했으나 후속조치는 아직 상당히 미미해 선언으로 그칠 것인가의 우려마저 들고 있다. 과거 강대국의 조건과 정보화의 대세 측면에서 볼 때 21세기를 몇년 안둔 현시점은 정보화에 의한 환경변화를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범국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姜永起 삼성경제연구소 정보통신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