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WIPO 저작권조약의 숙제

지난해 12월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국제 저작권사에 기념비적인 조약 2건이 체결됐다. 1991년부터 6년 동안 진행된 전문가위원회 회의와 96년 12월 초부터 3주간 진행된 외교회의 결과 「세계지적소유권기구(WIPO) 저작권조약」과 「WIPO실연, 음반조약」이 탄생한 것이다.

이는 기존 조약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부분이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자 기술발전에 따른 저작권법의 공백상황을 막자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디지털시대는 모든 사람이 문화와 예술, 정보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향유한다. 이에 따라 디지털기술을 법적 환경에서 수용하는 문제가 최대의 관심사로 등장한 가운데 이번 조약이 저작자들에게 새로운 권리를 부여하고,기존의 권리를 재조명함으로써 디지털시대의 저작권문제를 다소나마 해결하는 성과를 거둬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이번 조약은 디지털 송신을 저작권법상 이용행위로 규정해 주목된다. 디지털 송신은 저작권법상의 방송이나 공연과 마찬가지로 저작물 이용행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저작권법에서 인정하지 않는 이용행위는 저작자가 권리를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기존 법에서는 디지털 송신에 대한 권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조약에서 「공개전달권」이 신설됨으로써 이 문제가 말끔히 해소됐다.

아날로그 복제개념을 디지털 복제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정의(定義)를 확대한 것도 관심거리이다. 복제는 저작권법상의 이용행위 중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이 정의 하나가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엄청나다. 온라인 사업자의 영업, 네티즌의 통신망 이용 등에 바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복제의 핵심 사안, 즉 디지털 환경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송신이나 브라우징에 수반하는 일시적 저장(Temporary Storage)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것이 복제의 개념에서 빠지는 것인지, 복제의 범주에는 넣되 법률적으로 면책을 해줄 것인지, 어떠한 종류의 일시적 저장을 문제시할 것인지 등에 대해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베른협약이 아날로그시대에 만들어졌지만 복제권 개념에 관한 한 디지털시대에도 연장 적용된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두 조약은 또 저작권보호의 근간이라 평가받았던 「문학, 예술저작물」 보호라는 색채를 상당 부분 탈색시켰다. 저작권의 중심에 섰던 창작자가 옆으로 비켜선 채 원저작권을 바탕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보좌하던 기업 및 매개자들이 그 선봉에 서게 됨으로써 정보사회의 중심세력이 바뀌어가는 느낌이다.

또한 외교회의에 참석한 일부 선진국 비정부기구(NGO)의 활동도 괄목할 만한 것이었는데 이들은 자국의 입장에 동조하는 국가들을 상대로 정보를 주고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해 줄 것을 호소하는 한편 관심이 없는 국가대표나 인식이 부족한 국가대표들에게는 교육을 시켜가면서까지 자국의 입장을 강변했다. 일부 조항은 선진국 NGO의 작품으로 조약에 아로새겨진 셈이다.

인터넷을 통해 흘러다니는 정보를 함부로 취급했다가는 법망에 걸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경제적 가치가 있는 곳에 대가가 따르도록 법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이번 WIPO 저작권조약과 실연, 음반조약의 체결로 디지털시대의 저작권 숙제를 한꺼풀 벗겨낸 감은 있으나 많은 문제들이 국가간 이해대립으로 결말을 보지 못했거나 적당히 봉합하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이에 우리 정책당국은 기술변화와 각국의 입법동향을 지켜보고 조만간 법률개정에 들어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민간기업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특히 국제규범은 대부분 개정을 주도하는 국가의 의도대로 개정돼 온 점을 감안할 때 기술과 정보에 밝은 민간기업들이 정부의 법률 개정작업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각 분야의 이해득실이 정책결정의 중요 고려대상에 포함되도록 민간기업들이 발벗고 나서야 할 때이다.

<崔京洙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