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유통업계가 최근 중견업체들의 부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싱가포르 제1의 컴퓨터 유통회사인 IPC가 95%의 지분을 출자해 지난 92년에 설립한 한국IPC가 지난달말 부도를 내고 문을 닫은 데 이어 한국IPC와 거래관계를 맺어오던 멀티그램이 연쇄부도로 도산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세진컴퓨터랜드와 치열한 시장경쟁을 벌여온 아프로만이 12일 제일은행 무역센터지점 등으로 돌아온 29억원의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됐으며 세양정보통신도 13일 부도를 내고 문을 닫았다. 이밖에 상당수 중견 컴퓨터 유통업체들의 부도설이 끊이지 않고 있 다.
그동안 컴퓨터 유통시장에서 자기 영역을 구축하며 성장을 거듭해 온 이들 업체의 부도는 용산 등 전자상가와 관련업계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이미 부도 후유증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어음거래가 주를 이루던 유통시장에 현금이 아니면 제품거래가 잘 되지 않고 있고 일부 업체들은 제품판매보다 돌아오는 어음을 결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소리없이 문을 닫는 중소 컴퓨터 및 주변기기업체들이 많으며 일부는 다른 분야로의 전업을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현재 컴퓨터 유통업체들의 부도금액은 모두 3천억원 정도로 나타나고 있으나 중소 거래업체들의 연쇄부도를 합치면 그 규모가 5천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분석이다. 우리나라 컴퓨터유통이 80년대말 상가업체들의 조립컴퓨터 판매붐을 타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견해이다.
이들 중견 컴퓨터 유통업체의 붕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되어 온 일이다. 컴퓨터 유통업체들의 연속적인 부도가 노동법 문제와 한보사태 등에 따른 영향으로 전반적인 경기위축에서 일차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겠으나 더하여 컴퓨터 유통업체의 약한 기반 등 많은 문제들이 지적되고 있다. 기복이 있게 마련인 경기침체에 의한 부진은 경기가 회복되면 해결될 수 있으나 원인이 다른 곳에 있는 경우 이는 업계의 장래를 위해서 대단히 중대한 사태가 아닌가 한다.
컴퓨터 유통시장의 질서가 다른 어떤 품목보다 매우 혼탁하다는 점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최근들어 컴퓨터 유통업체들의 판매경쟁이 품질 및 서비스 경쟁보다는 지나친 「가격파괴」로 치닫고 있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판매가격의 30%에 해당하던 마진율이 최근에는 5% 이하로 떨어졌으며 밑지고 판매하는 하는 업체들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한다.
이 뿐만 아니라 편법거래와 복잡한 유통망으로 영업의 효율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것도 중견업체들의 부도를 촉진하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한가지 컴퓨터 유통업체들의 부도원인으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업체들이 환경변화에 대한 과학적이고 치밀한 분석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기업을 경영하며 무리하게 매장을 확충하는 등 「이익실현」보다 「외형늘리기」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의 성장산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컴퓨터 유통의 이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부도파문을 막을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업계는 물론 정부도 현재 컴퓨터 유통업계의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해 올바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 상황에서 가능한 조치는 원칙에 충실하면서 파장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부도업체들은 피해업체에 대한 보상 등 사후수습과 관련해 신속하고 공정한 처리를 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피해업체들이 많고 피해규모도 크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해 사태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 정부는 기업주들이 부도를 내기까지 빼돌린 재산은 없는지 또는 고의적으로 부도를 냈는지 등에 대해서 철저하게 조사해야 하며 기업주의 부도덕적인 경영에 대한 응징과 함께 컴퓨터 유통업계 전반의 피해를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