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판(珠板)은 셈판, 산판(算板), 수판(板)이라고도 한다. 주판은 전자계산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한테 덧셈과 뺄셈, 곱셈, 나눗셈을 하는 4칙계산의 필수품이었다. 그래서 한때는 주판을 국민계산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7080년대 상업계 학교에서는 필수과목으로 주산을 공부했고 금융기관 취업희망자들한테는 주산실력이 취업 여부를 가리는 바로미터로 작용했다. 학교근처 문구점에는 주판이 약방의 감초처럼 언제나 비치돼 있었다.
주판은 중국에서 발명돼 송(宋)나라 말기부터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주판은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서 많이 사용했다. 한, 중, 일 3국은 2년마다 주산경기대회를 열어 기량을 겨루고 있다. 올해는 8월에 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나라에서 주판은 이제 중국 황하의 앞 물결 같은 신세가 되고 있다. 전자계산기에 밀려 차츰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상업계 학교에서조차 주산을 선택과목으로 바꾸었다. 이수단위도 학교장 재량에 맡겨 일부에서는 주산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상업계 출신들의 참여 경쟁이 치열했던 주산경기대회에 관한 관심도 크게 낮아 89년1백만명을 웃돌던 응시인구가 지난해는 10분의 1 수준인 10만명 선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주산교육에 관해 아시아 각국은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은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주산을 가르쳐야 한다며 주산교육을 강화했다. 싱가포르의 경우 교육부가 학생들의 속셈능력과 숫자에 대한 개념을 향상시키기 위해 지난 94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주판사용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도 오는 2000년까지 각급 학교마다 주판을 40∼1백개씩 보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 일본은 해마다 2백만명 이상이 주산자격검정시험에 응시하고 있다. 더욱 주산전문대학과 주산박물관까지 설립했다. 흔히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말한다. 주산교육도 예외가 아니다. 주판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하기는 쉽다. 하지만 우리 앞으로 다시 등장시키기란 극히 어렵다. 주산교육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