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다리 하나 건너 프리몬트에 소재한 ESS테크놀로지스는 지난 94년 PC용 사운드카드에 들어가는 음원IC를 개발한 지 1년 만에 단일 IC로 1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기업이다. 그 뒤 기록적인 인기 속에 주식시장에 상장했고 현재는 비디오CD, 모뎀용 IC 등 다양한 품목을 바탕으로 2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회사를 세운 사람이 홍콩계인 프레드 챤 씨이고, 그의 부인인 애니는 IC 레이아웃 전문가로 한국사람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반도체 설계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국내 업체들은 이 회사의 성공전략을 한번쯤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다.
필자가 이 회사를 처음 방문한 것은 지난 93년 고교동창 초청으로 세미나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다. 당시는 음원 칩의 개발이 끝나가던 중이었는데 직원수도 50명 정도로 크지 않은 규모였다.
회사 매출이라야 장난감용 IC로 1천 만달러 정도가 고작이었다. CAD실에는 칼마(Calma)시스템만 여러대 있었는데 이 기계는 IC의 도면 그리기(레이아웃) 정도만 할 수 있을 뿐 논리 합성이나 자동 레이아웃 등 첨단기능은 전혀 지원되지 않는 구형 기계이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방에 들어가보니 「윈도 3.1」과 당시에 아직 공개 안된 「윈도95」 등이 운영되는 몇대의 PC만을 갖추어 놓고 소위 디바이스 드라이버라 불리는 음원 IC의 동작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중이었다.
이 회사가 사운드 칩을 만들기 전에는 일본의 야마하가 이 시장을 거의 독점했다. 야마하는 FM방식 사운드 발생에 관한 특허를 가지고 있었는데 칩 사이즈가 크고 별도의 마이크로 컨트롤러도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야마하의 특허는 그 시한이 끝나가고 있었고 따라서 ESS의 전략은 음원 칩에 마이크로 컨트롤러를 내장하여 단일 IC로 싸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외부에서 마이크로 컨트롤러의 설계를 라이선스하고, 음원 IC 전문가를 영입했다.
따라서 논리설계나 그보다 상위 수준의 IC설계는 별로 필요가 없고 단지 칼마 같은 CAD를 이용해 정성껏 칩의 레이아웃을 최소화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PC 메이커들이 자신들의 칩을 쉽게 쓸 수 있도록 음원 IC 드라이버용 소프트웨어의 개발에 전체 절반 정도의 인력을 투입했다. 그 결과 이 회사는 세계적인 음원 IC를 개발, 상품화해 엄청난 부가가치를 거둘 수 있었다.
결국 ESS의 성공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일등이 되기 위한 전략, 즉 칩의 크기를 줄인 단일 IC화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음원 칩이나 마이크로프로세서 등이 정부 지원으로 개발된 적이 있는데 주로 논리회로를 개발하고 게이트어레이나 스탠더드 셀 방식 등 효율이 낮은 IC로 동작을 검증하는데 만족하고 있음을 감암할 때 이는 매우 중요한 교훈이다.
둘째는 구형 기계인 칼마가 보여주듯 투자 효율성의 극대화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 출연 연구소나 국책 과제를 수행하는 회사에 가면 최신 컴퓨터와 CAD 소프트웨어를 자랑한다. 안타깝게도 비효율을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는 유연한 고용과 인센티브 제도를 최대한 활용해 우수인력의 확보와 동기 부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ESS는 실리콘밸리에서 우수 엔지니어들을 스카우트했고, 이들은 스톡옵션 등의 성공보수 때문에 저녁은 물론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했다. 우리의 경우 우수 인력을 구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연구소가 너무 많고 또 종신고용제나 스카우트 방지 등의 풍토 때문에 산업계의 고용체계가 과소비 속에 경직된 상태이다.
결론적으로 ESS의 성공은 정확한 시장전략과 장비 투자의 효율성, 그리고 인력의 효율적 배치와 최대 활용이라는 극히 평범한 경영방식의 결과로 보여진다. 따라서 필자는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한 정부지원이 아무리 많아도, 자본과 인력이 튼튼한 기업이 뛰어들더라도 반도체 설계나 소프트웨어 산업은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成元鎔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