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세계10위권 대학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지난 71년 홍릉 캠퍼스에서 문을 연 지 25년이 흘렀다. KAIST는 당시 석, 박사과정만 있는 특수대학원으로 출범했으나 지난 89년 한국과학기술대학과 통합하면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모두 갖춘 이공계 종합대학으로 성장, 올해 졸업생까지 포함해 박사 2천9백명, 석사 1만3백명, 학사 3천6백명의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을 배출해 냈다.

이 대학이 올해 야무진 계획을 발표해 주목을 끌고 있다. 2005년까지 세계 10위권 이공계 대학으로 도약하겠다(KAIST Top-10 프로젝트)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필자는 이 계획을 과학기술 인력의 육성이라는 차원을 떠나 국가의 총체적인 변신을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한 시도」라고 평가하고 있다. 대학은 지성의 고향이자 인재의 텃밭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학의 면면을 보면 한 국가의 운명을 점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큰소리치는 배경도 따지고 보면 하버드, MIT, 예일, 스탠퍼드, 칼텍과 같은 세계 정상급 대학을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대학이 세계 도처에 우수한 인재를 공급하고 있는 한 미국의 국제적인 위상은 결코 추락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KAIST의 세계 10위권 도약 목표는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우리 현장에 꼭 맞는 우수 인재를 우리 손으로 키워내는 일이야 말로 우리가 2010년까지 세계 7위권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KAIST가 올해 세운 목표는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과학논문 색인목록(SCI)에 등재된 논문편수로 볼 때 KAIST는 지난 95년 교수 1인당 3편으로 세계적인 명문 MIT보다 많았다. 학문분야별 전체편수에 있어서는 전기, 전자공학 분야가 미국 텍사스 대학에 이어 7위이고, 기계공학 분야는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에 이어 11위에 올라 있다. 이공계 박사학위자 배출규모 면에서도 선진국의 저명 대학들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KAIST가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선결해야 할 과제들 또한 산적해 있다. 우선 KAIST에서 수행하는 학문연구의 질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 SCI 게재논문의 평균 인용횟수를 보면 KAIST는 1.19회(91∼95년)로 MIT의 8.18, 칼텍의 8.82, 스탠퍼드 대학의 8.35회 등에 비해 아직 크게 뒤떨어지는 수준이다.

논문의 인용횟수를 지금보다 3배 이상 늘리겠다는 것이 KAIST의 목표이지만 훨씬 더 강도 높은 노력이 필요하다. KAIST에서 배출하는 인재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일도 시급하다. 이와 관련, 교수 1인당 학생수가 현재의 19명이어선 어렵다. 이를 적어도 MIT의 10명, 포항공대의 11명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이밖에도 구비해야 할 조건들이 구석구석에 널려 있을 것이다.

이들 과제는 의당 KAIST 교직원들이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모두 KAIST 독자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과학기술처가 강력하게 뒷받침해 줄 예정이지만 다른 경제 부처들과 민간 기업들도 힘을 보태야 한다. 여기에는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동참해야 하고 일반 독지가들까지 발벗고 나서면 세계 10위권 진입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세계 10위권의 이공계 대학을 국내에 갖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지극히 소중하기 때문이다. 다른 어느 것에 양보할 수 없을 정도로 으뜸가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비전과 의지가 있는 대학만큼 투자하기에 더 값진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저력을 가진 이공계 대학만큼 「투자횟수를 위한 담보」가 확실한 곳도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임자를 잘못 찾아가서 사회를 혼탁시키는 돈, 잘못 쓰여져서 나라를 망치는 돈이 모두 KAIST Top-10사업에 모여들어야 한다. 이것은 KAIST라는 한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약속된 미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崔石植 과기처 기술인력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