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PC유통업체 부도 도미노 이렇게 극복하라 (5)

「무리한 사업확장이냐, 아니면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포트폴리오 영업전략이냐.」

요즘 사업다각화를 추진중인 기업체 경영자들은 어느 방향으로 기업을 끌고 가야할지 고민중이다.

최근 연쇄부도로 쓰러진 중견 컴퓨터 유통업체들은 부도 직전까지 사업다각화를 추진하면서 나름대로 생존을 위한 치열한 영업전략을 구사했으나 대부분 실패의 쓴맛을 봤다.

결과적으로 이들 업체의 사업다각화는 무리한 사업확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업다각화란 주력사업으로 새로운 업종을 선택해 과감한 투자를 하되 이를 추진하는 회사의 경제력과 자금력이 충분히 뒷받침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포트폴리오 영업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사업다각화는 주력업종을 여러 가지로 선정해 각 업종의 위험을 분산시키면서 시장상황에 따라 사업규모의 확대와 축소를 다소 조정해 가면서 균형을 맞춰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부도가 난 컴퓨터 유통업체들은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수요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자금압박에 대해 대량물품 도입과 판매방식의 「정공법」을 시도하다 쓰러졌다. 시장축소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축소해야 할 사업규모를 오히려 확대하면서도 사업품목을 1, 2개로 한정해 추진한 결과다.

이들 업체 대부분 최근 시장이 확대되면서도 마진이 높은 노트북PC나 플로터, 통신기기 등 유망한 유통품목 선정에 한 템포 늦게 뛰어든데다 기존 컴퓨터와 주변기기 품목만을 고집하는 등 시장침체 속에서도 채산성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PC 및 주변장치사업에만 매달려 매출을 확대해 왔다.

컴퓨터 관련 유통시장은 일반시장과 달리 새로운 기술개발로 인해 제품 라이프사이클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는데다 가격변동마저 심해 하나의 사업에 전 기업의 매출을 맡기기에는 그만큼 위험도가 높게 마련이다.

아프로만의 경우 지난해 중순부터 조립PC를 주력상품으로 삼아 대대적인 시장공략에 나섰는데 당시 시장상황은 점차 조립PC업체의 시장점유율이 대기업PC에 밀려나고 있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90년대 초부터 지난해 중순까지 주력업종을 전혀 바꾸지 않은 아프로만은 조립PC분야에서 9백여 협력업체를 모집하고 대대적인 사업을 추진, 조립PC분야의 쇠락과 함께 몰락하게 됐다.

물론 지난해 중순 이후부터 CD 대여사업과 B&B라는 양판점사업 등 신규사업을 추진했으나 전체 매출액의 20% 수준을 넘지 못했으며 그나마 이 사업도 오랜 시장조사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국내시장에 정착되지 않은 일종의 모험사업을 택함으로써 위험분산 차원의 사업다각화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또 지난해 말에는 CD 대여사업과 양판점사업이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으나 주력업종의 몰락을 막는 데 역부족이었다.

용산상가의 한 관계자는 『아프로만은 지난 95년부터 상가를 중심으로 부도설이 끊임없이 나돌 만큼 경영악화가 심화됐는데 올해 초까지 버텨온 것은 나름대로 사업 및 품목다각화를 추진한 것 때문』이라고 밝혔다.

세양정보통신 역시 국제적인 보따리상, 이른바 「나카마」라고 불릴 만큼 지난해 말까지 유통품목을 수백종으로 크게 늘려왔다. PC에서부터 중앙처리장치(CPU), 메인보드, 컴퓨터 주변기기, 3D용 제품, 소프트웨어 등 취급품목이 컴퓨터 관련 거의 모든 제품을 망라할 만큼 많았다.

여기에 세양정보통신의 제품수요처는 아프로만과, 한국IPC, 한국소프트정보통신 등 일부 대형 유통업체에 집중됨으로써 「수요처의 이상(?)」에 따라 회사의 존립이 흔들릴 만큼 위험도가 컸다. 기업쇠락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위험분산을 실현하지 못했다. 한국IPC의 부도여파로 연쇄부도가 터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소프트정보통신의 경우는 컴퓨터 유통사업이 점차 빛을 잃어가면서 CD 대여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쳤으나 두 사업에 모든 영업력이 치우쳐 컴퓨터 유통사업분야의 부실이 곧 기업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사업다각화는 크게 업종별, 매장별, 품목별, 거래처별로 구분할 수 있다.

컴퓨터 유통업체들이 컴퓨터라는 큰 틀 속에서 성장한 만큼 컴퓨터업계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새로운 업종을 선택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한 업종에 오래 종사해온 사람이 그 분야에서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지식을 쉽게 포기할 까닭이 없으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 해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다.

상당수 컴퓨터 유통업체에서는 지난해 초부터 시장의 장기침체로 인해 누적적자폭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도 선뜻 업종을 변경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포세이돈컴퓨터는 업종다각화의 하나로 여행사를 설립했으며 두고정보통신은 종합정보통신망(ISDN)가입 대행사업을 추진하면서 새로운 기반을 넓혔다. 물론 현재로선 이의 성공여부를 정확하게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나름대로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만하다.

업종다각화 못지 않게 매장운영의 다변화도 필요하다. 매장운영의 다각화는 용산 등 전자상가의 수요를 대상으로 협력업체 위주로 이끌어가던 컴퓨터 유통업체들이 지난해 중순부터 직영점과 양판점사업에 새로 진출하면서 다소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분야이다.

최근 부도처리된 유통업체들은 공교롭게도 협력점 이외에 직영점과 양판점 등 새로운 매장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않았다. 아프로만이 양판점 형태의 매장을 운용했으나 유통망 확충에만 관심이 많았다.

직영점은 세진컴퓨터랜드를 비롯해 나진컴퓨터랜드가 도입해 운용하고 있으며 양판점은 전자랜드가 「컴퓨터21」이라는 점포를 열어 점차 확장되는 추세다.

품목별 사업다각화도 고려해야 할 분야다. 최근 부도가 난 업체들은 80년대 후반부터 지속돼온 컴퓨터 관련 품목을 지나치게 고집했다. 최근 노트북PC, 플로터, 통신기기 등 신규 유통품목을 적극적으로 취급하지 못했다.

최근 유통업체들의 품목다각화는 통신기기 등 업종 자체까지 변화할 만큼 새로운 품목선택이 다양화하고 있다. 전자랜드와 두고정보통신이 지난해 말 휴대폰, 무선호출기 등 이동통신기기 판매와 가입대행을 받고 있어 통신기기 유통사업에 참여했으며, 소프트타운에서 상호명을 바꾼 해태I&C도 올해부터 컴퓨터 한 품목에 한정하지 않고 전송장비 등 통신기기를 판매할 계획이다.

대형 컴퓨터 관련 유통업체인 선경유통의 경우 PC 관련 전 품목을 취급하면서도 시장상황에 맞게 그때 그때 신제품을 도입해 판매하고 있는데 최근 영상회의시스템과 재즈드라이브 등 신규수요 창출품목을 개발하고 있다.

거래처별 다각화로는 컴퓨터 유통업체들의 거래처가 소수 업체로 한정될 경우 거래업체의 이상징후로 유통업체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다각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선 거래금액이 커지면 어음발행 및 배서규모가 커지고 이에 따라 무담보 신용거래로 이어지는 등 소위 업체간 동반몰락의 위험성이 그만큼 커지게 된다. 유통업체가 연쇄부도에 휘말리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세양정보통신의 경우 한국IPC와 멀티그램의 두 업체의 부도로 당장 5백억원대의 부실채권을 떠안게 됐다. 이 회사는 또 아프로만에 3백억원, 한국소프트정보통신에 2백억원의 거래관계를 유지해왔다. 「물고 물리는 형태」의 거래관계를 맺어왔다는 것이다.

매출액 1천억원대의 5개 대형 컴퓨터 유통업체들이 20일 이내에 잇따라 쓰러진 것은 거래선의 다양화를 실현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전문가들은 『컴퓨터 유통업계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다각화가 아직까지는 주력업종인 컴퓨터 유통사업을 완전 대체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고 전제하고 『유통사들이 시장침체가 장기화하거나 부도업체의 등장 등으로 발생될 다양한 위험요인에 대처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 전략을 적극 마련하고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일희, 신영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