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여러 사람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조직이 구성되어야 하고 규칙이 정해지게 된다.
관료주의라 함은 정부의 조직적 측면에서 나온 것으로 생산성 측면보다는 그 조직 자체가 더 많은 힘을, 더 많은 인력을, 더 많은 예산을 갖기 위해 움직이게 되기가 쉽다는 것이다. 아니, 「쉽다」기보다는 숙명적으로 그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다.
나중에 혹시 잘못될 것을 고려해 「오리발」을 만드는 작전은 주로 많은 서류와 증명서를 요구한다. 힘을 발휘하기 위한 수단으로 「증명서류 미비」 등을 이유로 빨리 움직여야 할 조직의 활력소를 반감시킨다.
생산적인 일에 직접 관련되지 않는 인력이 많아지게 되고 이들은 「자기들의 일」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다른 부서에 특히 직접 부서에 「쓸데없는 일」을 시키게 되므로 이중으로 기업에 해를 끼치게 된다. 조직을 활성화시키고 생산적인 분위기로 만들기 위해 관료주의를 배격해야 함은 물론이고 이를 위해 최고경영자의 도움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물론 모든 분야에서 최고경영자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지만 관료주의 타파를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현장순시를 할 때 「위풍」을 보이기 위해 필요도 없는 인력을 거느리고 다닌다든지, 서류의 내용보다는 오자나 하자를 너무 강하게 나무란다든지, 밑도 끝도 없는 자료를 만들어 오게 한다든지, 누구의 잘못이냐를 먼저 따진다든지, 의전 따위에 너무 신경을 쓰면 모든 조직이 「분위기」를 맞추어 가기 마련이다.
나름대로 관료주의를 타파하는 방법을 제안해 보면 다음과 같다.
조직을 간소하게 하고 가능한 한 직접부서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그런 방법으로 유도하게 하라. 현장에서 실무자가 처리해도 될 일은 그들이 하게 함으로서 결국 「내 결정」이 되어 더욱 책임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서류를 줄일 수 있는 데까지 줄여라. 초소로 필요한 서류 이외에는 만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계약서와 같은 것은 필경 서류화해야 되고 상품의 스펙 등도 마찬가지지만 주위를 살펴보면 한번 보고 쌓아두는 서류가 얼마나 많은가. 무슨 무슨 전략회의다 해서 서류 만드는 시간, 조그마한 상품 하나 개발해 놓고 서류 작성하는 시간이 연구개발자가 실무에 사용한 시간의 반 정도가 된다면 문제고, 그 다음에 아무도 그 서류를 생산적인 일로 열어보지 않는다면 모두가 업청난 낭비이다.
또 하나는 크게 「욕먹을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대부분의 회사들이 「지원」이라는 「위장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관리조직」을 슬림화해야 한다. 정부의 규제가 많아 기업하기 어렵다고 말이 많다. 회사조직도 마찬가지다. 「지원부서」에서 지원보다는 「힘싸움」에 주로 동원되고 규범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기를 강요하고 그렇게 해서 연구개발이나 생산에 종사해야 할 인력들이 이들과 「사교」 내지는 「정치」를 해야 하는 것이다.
HP의 회장실에는 스태프라는 조직은 없다. 「관리부서」 혹은 「지원부서」라는 조직도 없다. 대신 「휴먼 리소스」라는 부서는 있다. 하지만 이 조직도 우리나라처럼 「인사」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전사적 차원에서 대규모로 신입사원을 동시에 뽑지도 않는다. 거의 모든 결정이 실무 부서에서 이루어지며 누구를 어떤 대우를 해주고 데려와야 하는 것도 실무부서에서 결정한다.
결정사항과 그 행위에 대해 믿고 책임을 지게 하면 감시해야 하고 「관리」 또는 「지원」해야 할 이유가 없게 된다.
<金錫基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