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통합(SI)업계가 변혁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연 30∼40% 이상의 고성장을 거듭해 온 SI업체들이 전반적인 경기 부진, 그룹 계열 신설 SI업체들의 급증,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잇따른 SI사업 진출, 경영컨설팅업체들의 전략정보계획(ISP)사업 진출, 공공 프로젝트 시장의 대외 개방 등 요인으로 대변혁기를 맞고 있다.
그간 업체들의 매출 신장세에서 볼수있듯 SI시장은 장미빛 일색이었다. 사회간접자본(SOC)의 확충, 국가정보화 사업의 활기, 그룹 전산망의 통합화 추세 등으로 SI업체들은 매년 급성장가도를 달려왔다.
앞으로도 국내 SI시장은 분명 확대일로를 걸을 것이 확실하다. 가령 국내 제일의 SI업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삼성데이타시스템의 경우 2005년 비전 프로그램인 「드림 21」을 발표하면서 오는 2005년까지 매출 10조원을 달성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LGEDS시스템도 2005년까지 4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밖에 쌍용정보통신, 한전정보네트웍, 코오롱정보통신 등 업체들이 너도나도 2000년 또는 2001년까지 1조원의 매출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같은 낙관적인 전망 덕분에 SI사업은 정보통신분야에서도 상당히 인기있는 전략사업 중 하나로 떠오른지 오래다.
이에 따라 대부분 그룹들이 SI업체들을 설립, 자사의 시스템관리(SM)시장은 물론 외부 및 공공 SI시장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삼성데이타시스템, LGEDS시스템, 쌍용정보통신, 포스데이타 등 기존 SI업체들에 이어 대림정보통신, 새한정보시스템, SK컴퓨터통신, 삼보정보시스템, 두산정보통신, 제일씨앤씨, KCC정보통신 등 업체들이 기존 그룹 전산실을 통합, 본격적인 SI 업체로 부상하거나 외부 및 공공프로젝트 시장에 신규 진출, 치열한 시장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존 경영컨설팅업체나 회계법인 계열의 경영컨설팅업체들이 경쟁적으로 기업리엔지니어링(BPR), 정보전략계획(ISP), 정보컨설팅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제임스마틴, 엔더슨 컨설팅, 매켄지, 보스톤그룹, AT커니 등 외국의 유수 경영컨설팅업체들이 국내 정보컨설팅 또는ISP시장에 진출, 국내업체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기존 SI업체들도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통해 쌓아온 노하우를바탕으로 경영 및 정보컨설팅,BPR 등 분야에 적극 진출, 혼전을 벌이고 있다.
한국HP, 한국IBM, 한국디지탈 등 중대형 컴퓨터 및 서버업체들도 그간 하드웨어 공급을 통해 축적한 경험과 고객정보를 바탕으로 SI시장을 본격 공략하고 있으며 한국오라클, SAP코리아 등 ERP분야의 전문업체들 역시 SI업체들과 제휴하거나 독자적인 영업망을 확보, 국내 SI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KDC정보통신, 콤텍시스템 등 네트워크 전문업체들이나 한컴서비스, 다우기술 등 소프트웨어업체들도 SI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같은 추세를 반영, 최근 SI업계는 춘추전국시대를 방불할 만큼 업체간 합종연횡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SI 사업을 해보겠다겠다고 명함을 내민 업체들이 워낙 많다 보니 어느 업체가 진정한 의미에서 SI 사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되어 버렸다.
지난해 7월부터 SI 사업자 등록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현재 SI사업을 하겠다고 등록한 업체는 4백여개를 훨씬 넘는다.
지난해 7월 현재 1백30여개에 불과하던 SI업체들이 무려 4백여개를 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국내 SI 사업이 얼마만큼 장미빛으로 채색되어 있고 또 왜곡되어 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파악할수 있다.
현재 SI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업체들중 상당수는 SI 사업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업체들이 많다. 네트워크 장비공급업체, 소프트웨어 용역개발업체 등 SI 프로젝트를 도저히 감당할 만한 능력이나 인력을 갖고있지 못한 기업들이 SI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나선것이다.
그렇다고 그간 SI사업을 전개해온 SI전문업체들의 위상이 확고한것도 아니다.
대부분 그룹사 SI업체들은 전체 매출의 80∼90% 이상을 그룹 SM분야에서 달성해왔다. 한 통계에 의하면 국내 30대 그룹 계열 SI업체들이 국내 SI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이 비중은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는 순전히 그룹사 물량 덕분이다.
그러나 올해를 기점으로 상황이 많이달라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특히 올해부터는 그룹사 시장이 예전처럼 그렇게 밝지 않을 전망이다. 대부분 그룹들이 그룹전산망 통합작업을 완료한 상태이고 후발 그룹들도 그룹 전산망 구축작업을 올해까지는 상당부분 완료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그룹사 시장은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매년 30% 이상의 고도 성장을 기대하기 힘든 부분이 그룹SM 시장이다.
따라서 국내 SI업체들은 외부 SI나 공공프로젝트 시장에 주력해야할 형편이다.특히 외부 SI사업의 근간이 되고 있는 공공 프로젝트 시장은 워낙눈독을 들이고 있는 업체들이 많다 보니 경쟁 자체가 매우 치열하고 신규 업체들의 적극적인 시장개척 노력으로 덤핑 또는 출혈경쟁이 우려되는 분야이기도하다.
혹자는 벌써부터 SI업계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까지 내놓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SI분야를 대표적인3D업종 중 하나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다소 비아냥 섞인 말투이긴 하지만 국내 SI사업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상당수 SI업체들은 그간 공공 프로젝트에서 다소 손해가 나더라도「우선 따놓고 보자」는 식의 영업을 추진하는경우가 적지 않았다.
결국 국내의 대형 SI업체들은 공공프로젝트 분야에 관한한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전문분야와는 상관없이 마구잡이식으로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금융분야 SI 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삼보마이크로시스템의 이동욱 사장은 『국내 SI업계에 매출 드라이브 위주의 프로젝트 수주가 상당히 일반화된 것 같다』며 국내 SI업계의 병페를 지적했다.
특히 공공 프로젝트를 발주하는 대부분기관들이 SI 프로젝트의 명세를투명하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블랙박스(Black Box) 형태로 시스템구축 사업자에게 떠안기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SI 업체들은 컨설팅비용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적은 예산으로 시스템을 구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후발 SI업체들이나 SI사업을 최근 강화하고 있는 업체 등을 중심으로 저가응찰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 중 하나다.
게다가 공공프로젝트 분야에서 발생한손해를 그룹 SM분야에서 보전하면 된다는 식의 편한 발상도 나오고 있다. 대부분 공공 프로젝트는 수행기간이 매우 촉박하게 진행되곤 한다. 예산부족에다 촉박한 납기를 맞추느라 SI업체들의 엔지니어들은 다소 무리를 하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SI 분야에서도 성수대교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와 함께 대형 SI사업자들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소규모 소프트웨어하우스나 할 만한 아이템을 갖고 중소기업 시장을 잠식하고 있기도 하다.
외국의 SI업체와 달리 국내 업체의 경우 SI 사업과 관련없는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삼성데이타시스템, 현대정보기술, 쌍용정보통신 등 SI업체들은 PC통신, ISP(인터넷서비스 제공)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대형 SI업체들은 「컴퓨터업계의 만물상, 잡화상, 백화점」 등으로 비하되곤 한다. 물론 여러 제품이나 서비스를 취급하면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SI업체로서의 모범적인 전형이 될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진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본격 가동으로 공공 프로젝트 시장의 대외 개방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따라서 국내 SI업체들의 위상은 더욱 불투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일정 금액 이상의 SI조달 프로젝트는 외국업체에 개방해야만 한다.
그러나 국내 SI 업체들의 기술력이나 위험관리능력은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사실 SI 사업은 프로젝트관리(PM)능력, 시스템 개발 방법론의 체계화, 전문 컨설팅 능력을 갖춘전문 인력의 보유에 사업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국내 SI업체들은 그동안 이분야의 기술력이 매우 부족했다.
이 때문에 대형 공공프로젝트의 경우 앞으로는 외국 SI업체나 컨설팅 업체들이 전체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국내 업체는 기술제휴선이란 그럴 듯한 명목하에 하청업체나 부계약자의 위치로 전락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국내 SI 업체들이 건전하게 성장할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업계 전문가들은 전문성의 확보가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사람의 전문화와 사업영역의 전문화가 필요하다.
해당 산업분야의 전문 컨설턴트가 되기위해선 해당 산업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 이상의 지식과 경험을 축적해야만 한다.이러한 관점에서 업계 전문가들은 최근 SI업계에 불고 있는 신인사제도와 교육사업 강화를 바람직한 현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사업영역의 전문화도 이제는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백화점식 사업추진 전략이나 매출 드라이브 위주의 영업방식에서 탈피해 채산성 확보, 세계적인 수준의 명품 만들기에 주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현재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SI업체들이 나름대로 전문적인 영역을 확보, 대기업들과 사안별로 제휴하거나 전략적인 차원에서 제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국내 SI 업체들은 최근들어 중국, 미국, 일본, 인도 등 지역에 현지 사무소나 소프트웨어 개발센터를 운영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국내 SI업체들이 국내시장에안주하지 않고 세계시장으로 웅비하겠다는 것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국내 SI업체들이 세계 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기술력이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SI 업체들이 장기 비전 프로그램이나 경영전략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도 역시 기술력이다. 기술력만이 SI업체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인식이 필요한때다.
<장길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