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컴퓨터 더 쉬워져야 한다

컴퓨터 유통업체들이 줄지어 도산하고 있다. 이들 업체가 쓰러지는 이유는 제 힘에 부치는 무모한 영역 확장에서부터 무리한 꺾기 관행, 한보사태로 인한 시중 은행들의 창구단속 등 업체별로 다양하다.

이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구매력이 예상했던 대로 확장되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소비자가 많으면 그만큼 물건을 제값에 더 많이 팔 수 있고, 그러면 기업이 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일단은 상당수 소비자들이 현재의 컴퓨터 구매에 선뜻 동참하지 않는 것을 불황의 제1 원인으로 손꼽아도 무방할 것이다.

최근들어 컴퓨터업체들은 실로 엄청난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사상 최고속도를 자랑하는 펜티엄 프로 2백 칩에서부터 멀티미디어 처리속도를 향상시킨 MMX칩, 또 CD롬에 이은 차세대 저장장치의 대명사 DVD, 윈도95나 오피스97과 같은 최신의 대용량 소프트웨어 등 실로 혁신적인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제품들이 많이 나오는데도 소비자들은 멀어져가고 있다.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신 기술을 채용해 전보다 훨씬 사용하기 쉽게 만들었다」는 메이커측 선전과는 달리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별로 나은 게 없고 오히려 더욱 복잡해지고 어려워지고 있다는 불평이 거세다.

물론 어느 정도의 전문지식만 갖추면 신제품들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많은 도구를 제공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전문지식 수준에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도태하고 마는 것이다. 이들은 메이커가 사용하기 쉽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값만 높였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최근들어 이같은 불만은 사용자 저항권의 표출로 이어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본사가 있는 미국의 워싱턴주 시애틀에서는 최근 「이 회사의 최신 운용체계인 윈도95가 사용하기 어려우니까 값을 되돌려 달라」는 집단소송이 제기됐다. 현재 미국내에서만 3천5백만명이 윈도95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결과에 따라서는 그야말로 세기적인 소송사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세기적 소송도 결국 아주 간단한 데서 불거져 나왔다.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처음 소송을 제기했던 뉴욕의 한 사용자는 『윈도95는 개발사의 선전과는 달리 처음 설치할 때부터 많은 문제를 야기시켜 급기야는 귀중한 자료들을 모두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며 『보통사람도 사용하기 쉽게 만들었다는 개발사의 선전은 결국 허구에 불과했다』고 소송이유를 밝혔다.

이번 소송사건은 컴퓨터 이용이 단순히 사용자들이 불편하다는 차원을 떠나 법률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소지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무지해서 그러려니」하고 참고만 있었던 소비자들이 「이제는 화를 낼 때가 됐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윈도95의 경우가 이 정도이고 보면 여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경우는 개선의 여지가 무한하다.

지금 서점가에는 컴퓨터 관련서적들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대열에 오른 제품은 한결같이 좀더 사용하기 쉽게 저술한 책들이다. 그만큼 컴퓨터를 쉽게 배우려는 수요층이 두텁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컴퓨터업체들은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한결같이 사용하기 쉽게 만들었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실상 내면을 살펴보면 쉽게 만들었다기보다는 편리하게 만들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컴퓨터를 잘 사용하는 사람들이 기존 두단계, 세단계를 거쳐야 했던 작업을 한단계로 줄일 수 있게 개선했다는 표현이 타당하다. 따라서 아직도 「입문의 강」을 건너야만 하는 초보자의 경우는 이같은 새로운 기능들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컴퓨터업계에 불고 있는 고성능화 및 속도 경쟁은 이제 더 이상 기술마니아들의 과시욕에 그쳐서는 안된다. 반드시 사용자들이 좀더 손쉽게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서 시장확대를 이룩하고 사회 전반적인 인프라도 한단계 올려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