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달려온 국내 브라운관산업에 제동이 걸렸다. 급속성장의 원동력이 됐던 공급부족에서 비롯된 호황국면이 마감됐을 뿐만 아니라 순식간에 공급과잉이라는 덫에 걸렸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급성장을 통해 세계 최대 브라운관 생산국의 자리를 굳힌 국내 브라운관업계가 과연 이번 위기를 무난히 극복하고 성장가도를 계속 달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고 일각에서는 반도체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삼성전관, LG전자, 오리온전기 등 국내 3사는 일부에서 감산을 예견하는 등 경기위축 전망이 나오고 있는 데 대해 매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올해 세계 브라운관시장의 공급과잉은 이미 지난해 충분히 예견된 사태이기 때문에 결코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며 올해 사업계획에도 이미 반영됐기 때문에 이같은 우려는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들은 연 초에 올해 평균 30% 이상의 지난해와 다를 바 없는 매출성장을 목표로 잡았다. 브라운관을 반도체산업과 동일한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스럽다는 반응들이다. 브라운관산업은 양과 질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고 전후방산업이라 할 수 있는 세트산업과 부품산업에서도 탄탄한 바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메모리 위주의 취약한 체질과 전후방산업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어 경기변동에 민감한 반도체산업과 다르다는 게 브라운관업계의 주장이다.
업계는 더욱이 브라운관산업은 세계 곳곳에 현지공장을 건설, 글로벌 경영체제를 구축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경기변동에 강한 대응력을 가질 수 있으며 올해 공급과잉이라는 악재를 오히려 허약한 체질을 가진 경쟁상대를 따돌릴 수 있는 기회로 보고 비용절감과 영업력 강화를 통해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데 경영전략을 맞추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업계의 품목구조로 볼 때 올해 세계시장의 공급과잉은 큰 부담을 주지 않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컬러TV용 브라운관(CPT)은 공급과잉의 정도가 지난해보다 줄어들 기미인 데다 국내업계는 TV계열사들과 연계해 탄탄한 판매처를 확보하고 있고 해외 현지공장을 통해 현지생산, 현지판매 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에 재고부담을 안을 정도는 아니다. 컬러모니터용 브라운관(CDT)도 올해 전체 공급과잉량의 70% 가량이 14인치에서 발생될 것으로 예상돼 15인치 이상 제품의 비중이 높은 국내업계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전망이다. 대만의 중화영관이 주력품목인 14인치의 생산을 줄이고 얼마만큼 15인치의 생산을 늘리느냐에 따라 국내업계가 받는 영향은 달라질 수 있으나 14인치와 15인치의 생산기술의 격차가 현격하기 때문에 중화영관이 단시일 내에 15인치 생산비중을 높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국내업계가 실제로 우려하는 것은 전반적인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하락이다. 가격하락은 곧 채산성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최소화하느냐가 가장 큰 난제인 셈이다. 국내업계는 이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경쟁사 제품과의 품질차별화와 경영합리화를 통한 경비절감을 추진하는 한편 지나친 공급과잉을 양상을 보이는 14인치 CDT의 경우는 그동안 초과 가동하던 생산라인을 정상가동으로 전환함으로써 가동률을 10% 정도 줄여 가격하락을 예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