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인간세상의 천년이 하느님에게는 얼마나 됩니까.』 『1초도 안돼.』 『1조원은 얼마나 됩니까.』 『1원도 안된다.』 『하느님, 1원만 주세요.』 『1초만 기다려라.』
은행에서 잘해야 몇천만원을, 그것도 어렵사리 빌려쓰는 것이 고작인 일반인들에게 요즈음 연일 매스컴을 타고 있는 한보사태는 예전에 유행했던 우스갯소리 같은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실제 5조원이라는 금액에 대해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무관심하다기보다는 「조」라는 단위가 머리속에서 반응을 느낄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서는 것인데다 이같은 일이 몇차례 반복되다 보니 무뎌진 때문이리라.
나라 살림이 어렵다, 가계도 어렵다 말은 많이들 하지만 우리네 씀씀이는 그다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올들어 출국건수가 줄어들고 소비성 유통업체들의 매상이 떨어지는 등 경각의 조짐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아직 멀었다」는 느낌을 주는 사례들이 훨씬 더 많다. 「선물 인플레」는 샘플이라 할 만하다. 정치인들이 몇억원이나 하는 거금을 「떡값」이라고 가볍게 말하는 따위는 거론할 가치도 없다손치더라도 우리 경제의 뿌리인 일반 국민들이 거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를 일부 기업이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뱃돈이나 경조사 인사비용이 부담스러워진 지는 오래이고 이제는 국적불명의 「발렌타인 데이」인지 하는 상인들의 축제(?)에도 전에는 초콜릿 등 작은 물건들이 주로 팔렸으나 이제는 무선호출기에서부터 값비싼 제품에 이르기까지 갈수록 손들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각 대학들의 졸업, 입학시즌을 맞아 자동차나 이동전화를 비롯, 학생이나 사회 초년생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고가, 고비용의 소비재 업체들이 졸업생과 신입생을 대상으로 판촉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과거 몇년 전 무선호출기 업체들이 중, 고등 학생들을 대상으로 판촉경쟁을 벌여 각종 사회문제를 유발하기도 했던 기억이 잊혀지지도 않았건만 요즈음의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는 이같은 행태에 아연할 따름이다. 「기업의 윤리를 말하는 이는 많아도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고 탓하기에는 총체적으로 너무 얽혀 있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