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전자제품 디자인

우리나라에서 제품(산업)디자인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 70년대 들어서였다고 볼 수 있다. 70년에 「한국디자인포장센터」가 설립되고 상공부(현 통상산업부) 고시에 의해 처음으로 디자이너 등록제가 실시되었으며 72년에 서울대와 홍익대에 산업디자인(ID) 전공학과가 개설됐다.

그리고 70년대 당시에 만들어졌던 흑백TV, 세탁기, 냉장고 등은 고작해야 수입된 부품들을 조립해 생산하는 수준이었고 디자인의 역할은 제품의 인쇄사양을 만들어주는 것에 불과했다. 80년대 초기에는 수출 주도의 성장기였으며 우리 스스로 자립해야 산다는 절실한 생존 차원에서 기술만이 제품경쟁력 제고를 위한 유일한 수단이며 기업경영의 핵심으로 부각됐다. 당시의 디자인은 철저히 기술, 생산, 가격에 따라 좌우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지만 치열한 기술개발 경쟁과 첨단화는 오히려 일반 대중의 생활을 편리하고 쾌적하게 해주는 생활속의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위한 기술로 치우쳐 기업의 수익에도, 고객의 요구에도 부합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90년대 들어 시장개방 및 세계화와 더불어 국경을 초월한 무한경쟁시대가 열리고 기업들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21세기 초일류 기업으로 생존하기 위한 경쟁력 확보의 필요성을 절감, 디자인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게 됐다. 왜냐하면 기술력을 제품혁신의 「씨앗」이라 한다면 디자인이야말로 탐스러운 「열매」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디자인의 중요성 인식과 더불어 디자인을 단지 제품의 외형만을 디자인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도 안되게 되었다. 제품 자체의 하드웨어적인 요소만을 디자인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고 제품 자체외에도 제품이 가지고 있는 모든 부가적인 요소와 속성, 사용자의 잠재 욕구와 라이프스타일 등을 깊이있게 연구하여 소비자들에게 더욱 편리한 제품, 아니 소바자가 기대하는 것 이상의 제품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아무런 감동도 줄 수 없게 됐다. 제품의 품질, 기능, 내구성, 가격 심지어 이제 외형 디자인조차도 국경을 초월해 큰 차이가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품의 디자인 차별화는 제품의 외형에 달려 있다기보다는 제품에 스며있는 소프트한 요소를 사용자의 기대에 어떻게 부합시킬 것인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런 소프트 부문의 영역은 디자인 관련 기초연구가 그 바탕이 되므로 기업과 교육계, 디자인 관련 정부기관 등을 주축으로 장단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활로를 찾아 국내 자원의 시너지를 최대로 집중시켜야 할 부분이다.

지금 우리나라 기업은 제품의 경쟁력 약화로 국내외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특히 전자산업은 더욱 국내 시장만으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시기에 이르렀다. 기존 국내시장 중심의 상품기획, 디자인, 개발, 영업에서 빨리 수출중심으로 벗어나지 못하면 쏟아져 들어오는 수입제품과의 경쟁에서도 이겨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타개해 나가기 위해서는 기업은 물론 국가적인 차원에서 「독창적인 디자인」과 「산업디자인의 세계 일류화」에 바탕을 둔 고부가가기치 제품개발에 모든 전략의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는 국가 정책적인 차원의 지원이 매우 시급하다. 그리고 기업들은 세계시장을 상대로 눈을 돌려 「현지디자인 개발 체제」를 확립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 우리의 제품과 디자인이 세계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해야만 할 것이다.

<鄭國鉉 삼성전자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