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파괴를 앞세운 신규 할인점들이 속출함에 따라 제조업체들이 기존 대리점과 이들 신규 유통업체들과의 차별화 정책을 마련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가격파괴형 할인점들이 국내 유통산업에서 차지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아 제조업체들은 기존 대리점이나 총판업체들을 통해 할인점들에 제품을 공급해왔으나 최근 이들의 숫자가 급증하고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물량도 갈수록 늘어나게 되자 이들을 무시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가격파괴로 상징되는 대규모 창고형 도소매점들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잇따라 등장, 주위 상권을 장악해 나감에 따라 일부 업체들은 신규 유통업체들에 제품을 공급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며 일부 업체들은 이미 기존 대리점들과는 다른 제품 공급계획을 수립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프라이스클럽, 킴스클럽, 이마트, 마크로, 까르프, 클레프 등 지난해 말까지 설립된 대규모 가격파괴형 유통점들은 약 30여 군데. 이 가운데에는 국내 유통업체와 외국업체가 합작투자 형태로 출현한 경우도 있고 외국업체가 독자적으로 국내에 진출한 경우도 있다. 또 백화점에서 자회사 형태로 할인점을 설립해 운영하는 곳도 13군데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가격파괴형 유통점들은 올해 20여 군데 이상 새로 생길 것으로 알려졌다.
대규모 가격파괴형 할인점포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이들이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물량도 급증함에 따라 제조업체들은 이들에 대한 제품공급을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 회사 매출 가운데 기존 대리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줄고 신규 할인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디오와 전화기를 생산하는 태광산업의 경우 이미 올해초 사업계획을 통해 기존 대리점과는 다른 제품을 이들 대규모 할인점들에 공급하기로 했다. 특히 오디오의 경우 앰프, 스피커, 카세트데크, CDP 등 여러가지 단품이 결합돼 시스템으로 판매된다는 특성을 살려 태광산업은 각 단품들을 다양하게 결합시켜 모델 수를 늘린 뒤 이 가운데 일부는 기존 오디오 대리점에, 일부는 가격파괴형 할인점에 각각 공급할 계획이다.
그러나 태광산업은 여전히 기존 오디오 대리점의 지위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신규 유통업체 출현으로 대리점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강구하고 있다.
태광산업과 달리 올해에도 가격파괴형 유통점포들에 제품을 공급하지 않겠다는 회사들도 있다. 한국샤프나 롯데전자는 신규 유통점들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으나 이들을 중심으로 제품 공급계획을 수립하면 기존 대리점들의 반발이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아직도 기존 대리점들의 판매물량이 절대적이어서 당분간 신규 유통점들에는 제품을 직접 공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기존 대리점들이 할인점과 별도계약을 체결해 자사 제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권장할 방침이다.
그러나 올해 하반기나 내년부터는 현재 출현한 가격파괴형 유통점들이 전국적인 체인망을 형성해 국내 유통시장을 장악할 것으로 보여 대다수 제조업체들이 이들에 직접 제품을 공급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제조업체들이 유통업체들을 골라가며 제품을 공급하고 있지만 앞으로 유통업체들이 전국적인 체인망을 갖고 엄청난 물량을 판매할 경우 유통업체들이 제조업체들을 골라가며 제품공급을 요구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