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평] 「blur」

영국 록음악계를 대표하는 그룹 「블러」가 새 작품을 내놓았다. 블러는 3집 앨범 「Park Life」와 4집 앨범 「Great Escape」을 국내에 소개해 인기를 모은 데 힘입어 새 앨범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노 다우트, 가비지, 리퍼블리카 등 무서운 신예밴드들의 틈바구니에서 적지 않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블러는 같은 영국출신 밴드인 「오아시스」와 함께 브릿 팝(Brit Pop:영국의 대중음악계를 줄여 부르는 말)의 자존심을 지켜나가고 있는 그룹이다.

오아시스는 지난 95년 이후 「Morning Glory」라는 앨범으로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영국 내에서만은 블러를 섣불리 위협할 수 없었다.

신선한 충격과 진보적인 사운드로 무장된 블러의 음악세계는 1,2집의 실험정신을 넘어 3,4집에서 원숙함과 대중적인 감각을 선보이면서 인기를 더해갔다. 이번에 선보인 앨범 「blur」는 그룹 블러가 자신들의 위치를 더욱 굳건히 다지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작품.

첫 곡 「Beetlegum」은 안정된 분위기로 다가서는 영국 모던록 음악의 전형적인 틀을 잘 지키고 있다. 「Song」는 보다 더 강한 힘을 실었으며 「M.O.R.」는 라이벌그룹인 오아시스를 겨냥한 듯 「팝음악시장에서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뤄보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Theme from Retro」는 환각적인 느낌을 갖게 하는 편곡이 블러의 새로워진 음악적 변화를 암시한다.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 국내 팬들의 취향에 적합한 「You’re so Great」는 가장 원초적인 사운드로 편안함을 주며 「Look inside America」는 영국 출신의 선배 록그룹들의 영향을 받은 듯한 복고풍의 곡이다.

이들의 음악을 처음 접하다보면 쉽지는 않지만 무엇인가를 붙잡게 하는 마력이 있는 듯하다. 물론 블러의 음악을 심오하게 들었던 팬이거나 최근 작품들의 정제된 안정감을 지지했던 사람들에게는 마치 신진밴드들의 출현을 보는 듯한 착각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실망이나 퇴보로 단정지을 수도 있겠지만, 영국 록계의 자존심인 블러의 「처음부터 다시」라는 자세와 음악적 신선도는 더 나은 작품의 탄생을 예고한다.

<이종성, 팝칼럼니스트>